이 글에서 말하는 ‘외국 사정’이란 널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외국의 법리, 판례, 입법동향 등 법문화에 대한 것을 말한다.

본인이 법학공부를 시작할 무렵, 그리고 경력을 시작할 때에는 적어도 지금보다 외국의 법률사정에 대해 훨씬 더 관심이 많았다.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하는 경우뿐 아니라 실무를 하는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그러하였다. 물론 그때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고 할 수는 없으나, 최소한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졌고 실무에도 반영되도록 노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세월이 변하여, 이제는 국내 판례도 많이 나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고, 그래서 본인이 보기에 상당히 열심히 일하는 법률가 중에서도 더이상 외국 것을 참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실무계에서도 그런 경향은 두드러져서 통상의 사건에서 외국 사정을 거론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법원도 예전에 비해서는 관심을 덜 가지는 것 같다.

이 짧은 글에서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우나, 사정이 위와 같다 보니 외국 사정을 조사하여 참고하였더라면 좋았을 듯한 상황 하에서도 국내 판례 정도를 거론하고, 그 이상으로는 소위 ‘리걸 마인드’로만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싶다.

과연 이러한 상황이 바람직한 것일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령 우리 판례가 많이 축적되어 있고 국내에서의 법리도 충분히 발전하였다고 하더라도 외국 사정을 참고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꼭 우리의 수준이 뒤떨어져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부족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선례가 있다면 외국 것도 참고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외국 사정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말할 것도 없이 해당 외국어 공부에 상당한 공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의 사정상 법률업무를 떠나서라도 영어는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해야 하겠지만,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직업적인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는 수준으로 외국어를 숙달하는 것은 사실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영어 이외의 다른 외국어의 경우에는 더 힘이 들 것이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을 감안하더라도 외국 사정을 좀 더 검토하는 일,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기 위하여 외국어학습에 투자하는 일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다. 본인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이러한 일은 법률가라는 직업에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서 인생을 풍부하게 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투자는 혹시라도 직업을 바꿀 필요가 있을 때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외국어는 배우는 것 자체가 매우 힘이 드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법문화를 이해하고 자신의 업무에 도움이 되게 하려면 단기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초년생 시절부터 꾸준히 관심을 갖고 접해야 필요할 때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접근할 수 있다.

특히 경력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법률가시라면, 어느 외국어라도 좋으니 법률가라는 직업에 의미가 있는 외국어를 선택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연찬을 하고 나아가 그 나라의 법문화에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임채웅 변호사

서울회, 법무법인(유) 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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