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변호사 /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김주영 변호사 /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미국, 유럽 등지에서 최근 급속도로 발달해 온 소송금융(Litigation funding)이 우리나라에도 등장했다. 소송금융이란 이해관계 없는 제3자가 소송 당사자에게 변호사 선임 비용 등 소송에 필요한 비용을 투자하고, 승소·합의 등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경우 자금을 회수하는 사업모델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는 그간 이러한 서비스가 전무했는데 지난 해 3월 리걸테크 기업인 로앤굿이 처음으로 관련 사업을 시작해서 투자금 일부를 회수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으며 엘박스를 비롯한 다른 리걸테크 업체들도 관련 서비스를 시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어떤 개인고객이 자신에게 위험한 금융상품을 권유해 손실을 입힌 은행을 상대로 부당권유에 따른 손해배상을 받으려 한다고 가정하자. 이 개인고객이 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은행과 법정싸움을 벌이기 위해 오랜 기간 시간과 감정을 소모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인지대와 변호사 착수금 등 적지 않은 금전적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몇 년 후 승소하면 들어간 비용을 상회하는 배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패소하면 오히려 상대방의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없는 돈이 생기는 것보다 있는 돈이 없어지는 것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 위험회피적 성향을 갖고 있으므로 열의 여덟, 아홉은 소송을 포기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소송금융을 이용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개인고객이 소송금융회사와 상담해서 지원이 결정되면 소송금융회사가 인지대와 변호사비용 전액을 부담하니 적어도 재정적 부담은 없이 소송을 시작할 수 있다. 지원받은 소송비용은 추후 사건에서 승소해서 돈을 받았을 때만 승소금의 일부와 함께 돌려주면 되고 패소하면 반환할 필요가 없다.

소송금융의 이점은 분명하다. 소송금융은 진실과 정의를 원하지만 법적 분쟁에 따르는 높은 비용 때문에 이에 접근하는 것을 저지당하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빛이 될 수 있다. 즉 소송금융은 개인이나 중소기업이 대기업이나 금융기관과 같이 재정적으로 강력한 상대와 대결할 때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해 주며, 정의가 단지 부유한 자의 특권이 아니라는 것을 보장한다. 또한, 법률시장의 혁신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소송금융은 법률시장에서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가능하게 하여, 고객의 즉각적인 재정 능력에 구애받지 않고 가치 있는 사건이 수행될 수 있도록 한다. 소송금융 서비스는 비용 때문에 변호사 선임을 망설이거나 포기하던 사람들로 하여금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함으로써 법원에 큰 부담을 지우는 나홀로 소송을 억제하고 법률서비스시장의 규모를 확대한다. 의뢰인들로 하여금 유능한 변호사에게 제대로 된 수임료를 지불하도록 함으로써 변호사 보수를 정상화하고 변호사들도 광고나 수임료 덤핑보다 실력과 전문성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우리 민사재판제도는 원고가 소송가액에 비례하는 인지대를 먼저 선납해야 하고, 증거수집도 어려워 송소의 불확실성이 크며, 법률시장이 대기업을 주로 대리하는 대형로펌들과 개인들을 주로 대리하는 영세 법률사무소로 양극화되어 있어 법률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회복시키는 소송금융이 특히 필요하다. 물론 생소한 제도이기도 하고 소송남발이나 제3자의 소송절차 개입이라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변호사가 아닌 자가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관계에 관여하는 것을 규제하는 현행 제도와 조화될 수 있을지에 관한 의문도 있다. 하지만 이미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이웃 일본에서도 본격화된 소송금융을 신중하게 육성하는 것은 법률서비스시장의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하다. 변협은 법조윤리의 수호자일 뿐만 아니라 법률서비스시장의 조성자라는 역할도 담당한다. 따라서 변협은 소송금융이 지원되는 사건에 관여하는 변호사들에게 적용할 윤리 지침을 개발하고 소송금융의 복잡성을 윤리적이고 효과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하며 소송금융의 실무관행을 모니터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여 소송금융이 법률시장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김주영 변호사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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