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은 변호사
국고은 변호사

정책은 정무를 바꿀 수 없지만, 정무는 정책을 바꿀 수 있다. 활동가와의 저녁 자리에서 ‘김건희법’이라 불리는 개 식용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일에 대해 우리가 내린 결론이었다. 오랫동안 특정당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활동가는 그날 자신의 오랜 염원이었던 개 식용 금지법이 특정당의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당시의 심정을 우리에게 소상히 설명해주었는데, 당시 그가 지었던 표정은 아직도 해석되질 않는다.

국회에서 일하게 된 후, ‘왜 그곳에서 일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새로이 만나게 된 사람, 아니 원래 알던 사람들도 한번은 물었다. 이 글을 빌려 답하자면 국회는 사람이 사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곳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매체에서야 그 특성상 탈법적이거나 위법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상황들을 자주 다루지만, 현실에서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인다. ‘신념’이라는 초현실주의적 개념을 다뤄야 하기에 입법 과정의 알고리즘을 수식처럼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땐 법률안 통과 알고리즘의 부재가 괴로웠는데, 일하다 보니 오히려 그 틈 사이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기적에서 희망을 본다.

그러나 오로지 사람이 하는 일인 이곳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는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 국민 삶의 질’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회 신뢰도는 24.1%로 최하위였으며, 100여개국의 사회과학자들이 함께 조사한 ‘세계 가치조사’에서 2022년 한국 국회 신뢰도는 20.7%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정치에 대한 혐오는 이제 무관심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반복된 실망이 정치에 대한 혐오를 낳고, 그 혐오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관심을 택한 사람들을 보면 어디서부터 그들의 마음을 돌려야 할지 생각이 서질 않는다.

채플린의 말처럼 정치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겠지만, 사실은 많은 비극을 하루하루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끔찍한 사고 현장의 책임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생업을 챙기는 날은 국회 일상의 단면이다. 지쳐 무너지기 전의 국회는 지금 국민의 관심이 절실하다. 하지만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은 극에 달해 있다. 이 둘 사이엔 연민에 가까운 애정이 절실하다.

서로 어여삐 생각하는 것. 나를, 타인을, 사회를, 자신의 선택을, 자신이 아닌 사람들의 선택을. 서로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바라던 결과가 도출된 것은 누군가의 선택이었으며, 그렇지 않은 결과 역시 누군가의 선택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그러기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다음엔 다른 선택을 통한 원하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그 가능성을.

여느 평범한 날 식사 자리에서 친구가 “속한 당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라 물었을 때, “국회에서 일하기 전까진 정치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일하다 보니 속한 당이 조금 좋아진 만큼 어떤 당도 좋아졌고, 속한 당이 싫어졌는데 또 그만큼 어떤 당도 싫어졌다”라 답했다. 그 말에 이어진 친구의 답변이 생생하다. 잘된 일이네.

/국고은 변호사
국회의원실 선임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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