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가 판결의 내용을 떠나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거나 원고를 감정적으로 질책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또 억울한 점이 풀어지고 친구들과 행복한 관계를 누리는 즐거운 학창시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쉽지 않지만 이번 일을 통해서 원고가 한 걸음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위와 같은 글을 덧붙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재판부의 진심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가 내놓은 판결문 일부다. 당사자가 청소년이라는 점을 고려해 주요 판시 내용과 당부 사항을 쉬운 말로 정리했다.

만연체와 일본어 잔재가 강하게 남아있는 기존 판결문과 사뭇 다르다.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내용과 함께 형식도 바꾼 재판부의 고심이 엿보인다. "법 위반은 아니더라도 문제된 두 가지 행위는 미성숙하고 바람직하지 않다"며 따끔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어 "이번 일을 거울삼아 멋있는 어른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며 따뜻한 위로도 건넸다.

'난해한 판결문'이라는 높은 장벽을 허물고, 당사자와 진정어린 소통을 하고자 한 이번 판결문은 많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다. 

매년 전국 지방변호사회에서 발표하는 법관평가 결과를 보면, 높은 평가를 받은 법관의 공통점이 '소통'이다. 소송 당사자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태도에 변호사들이 앞다퉈 높은 점수를 매겼다. 반면 당사자 의사를 무시하거나, 사실관계에 관한 설명을 듣지 않는 등 '불통'은 냉정한 평가를 받았다. 

사건 당사자가 재판 결과를 수긍하려면 재판 절차에서도, 판결문에서도 소통은 필수다. 재판은 사법불신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이 아니라 당사자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판결문을 쉽게 작성하자"는 주장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하지만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판결문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권위는 '어려운 판결문'에서 나오지 않는다. 판결문은 간결할수록 좋다. 또 쉽게 읽혀야 한다. 이번 서울행정법원 판결이 보여준 긍정적 변화가 꾸준히 이어지며, 널리 확산하기를 기대한다. 당사자를 배려할수록 사법 신뢰가 높아진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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