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논어에서 나온 말로, 국민의 신뢰가 없다면 국가와 정치가 존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석준(사법시험 29회) 대법관은 지난해 취임식에서 '사법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인용했다. 사법신뢰 회복이 오 대법관만의 염원은 아니다. 고위직 법관 취임사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골 멘트다. 

그러나 사법 불신의 골은 오히려 깊어져 가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자행되는 야만적 범죄에 법원이 잇따라 솜방망이 판결로 대응하면서 국민은 아연실색하고 있다.

얼마 전 일이다. 사기그릇으로 여성의 얼굴을 때려 실형을 선고받은 전 국회 보좌관 A씨가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 받았다. 합의 없이 A씨의 엄벌을 원했던 피해자 의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방청석에서는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상해 정도가 가볍지 않고, A씨가 아직까지 피해자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면서도 "A씨가 반성하고 있고 원심에서 3000만 원을, 항소심에서 추가로 2000만 원을 공탁했다"며 감형 선고했다.

민심은 들끓었다. 댓글창에는 "피해자 합의 여부를 봐야지, 어떻게 공탁이 감형 사유냐"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왜 자꾸 재판부가 용서하냐"는 등 재판부 결론을 전혀 수긍하지 못하면서 분노하고 있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비판을 받고 있는 형사공탁제도의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 국민이 이렇게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판부가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로 피해자는 다시 불안에 떨게 될 처지에 놓였다. 가해자는 "자는데 깨웠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여성을 둔기로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물리적인 힘 차이로 피해자는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똑같은 아픔, 혹은 그 이상의 고통을 다시 겪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일상을 지배하게 됐다.

사법부는 행동으로 사법신뢰 회복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법관이 피해자 입장과 의사를 면밀히 고려할 수 있도록 양형인자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더하고 빼는 기계적 양형이 아니라, 피해자 입장에 가중치를 두고, 범죄의 중대성,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 등을 입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민심은 피해자를 향해 있다. 민심은 선량한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하고,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판결에 분노한다. 더이상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일차원적 양형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권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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