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외국인 학술논문상 수상자 아드리안센스 성균관대 법학대학원생 인터뷰

네덜란드서 로스쿨 졸업 후 아내 따라 한국행… 한국서 사학석사, 법학박사 과정

세계 기후소송판례와 한국 기후변화 논문… "청소년 주도 헌법소원에 깊은 감명"

"헌재, 빠른 판단보다는 신중한 접근을… 유럽인권재판소 관련 판결도 지켜봐야"

"근로자에게 '쉴 권리' 줘야… 대부분 OECD 국가가 도입한 상병수당제도 도입을"

△ 사진=오인애 기자 
△ 사진=오인애 기자 

"기후변화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할 문제이지만 변호사 실무와는 거리가 있는 주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한변협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논문을 특별상으로 선정해 주셔서 기후를 위해 투쟁하시는 분들에게도 그 영광이 돌아간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지고 더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9월 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31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에서 학술논문상 특별상을 수상한 아드리안센스, 토마스 C.(Adriaenssens, Thomas C.) 성균관대 일반대학원 법학과 학생은 이같이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학술논문상 외국인 수상자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법학사를 취득한 뒤, 틸버그 로스쿨(Tilburg Law School)에서 사회법을 전공했다. 네덜란드 준 변호사 자격증(Statement of Civil Effect)도 갖고 있지만 크로아티아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중 만난 현재 아내와 사랑에 빠져 한국행을 택했다. "네덜란드에서 일하는 게 더 쉬울 수도 있겠지만 아내가 한국을 사랑하니까 한국에 오게 됐다"며 수줍게 웃는 모습에서 아내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엿보였다.

대한민국정부 초청 외국인장학금을 받아 한국 생활을 시작한 그는 1년의 한국어 연수 후 전남대에서 사학과 석사를 마쳤다. 이후 성균관대 법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공익법센터 어필에서 연구와 번역, 자원봉사 등의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지난해부터는 전북대에서 필수교양 서양사 강의도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우연히 대학원 홈페이지에서 '학술논문상 공모 소식'을 확인했다. 하지만 첫 해에는 논문 제출 기간이 지나 참여할 수 없었다. 1년을 기다린 끝에 올해 처음 논문을 제출했고, 특별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공모전 존재를 처음 알게 됐지만 소식을 너무 늦게 확인해서 참여할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꼭 참여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기간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일정을 체크해뒀습니다. 올해 공지를 보자마자 준비해 놓았던 논문을 제출했습니다."

그가 제출한 논문은 '네덜란드 우르헨다 판결, 아일랜드 FIE 판결, 독일 기후보호법 위헌판결, 그리고 한국의 기후변화'였다. 논문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각국 소송 당사자들이 어떻게 외국 판례를 차용했는지 검토했다. 학술논문상 심사위원들은 "네덜란드 우르헨다 판결을 비롯한 기후소송 등을 소개하고 그 시사점을 제시한 점에서 연구방법론이 적절하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네덜란드 브레다 시청에서 근무하던 2019년에 기후운동단체인 '우르헨다(Urgenda) 재단' 주도로 한 기후소송이 뜻밖에 고등법원에서 승소했고 대법원 상고 중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이후 한국생활을 하다 한국 학생들이 국가를 상대로 기후변화소송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네덜란드 우르헨다 판결을 기반으로 해서 더욱 관심이 갔고요. 10대 청소년들이 국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주로 사회법 관련 주제를 연구하지만 이 이야기를 꼭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드리안센스 씨가 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31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에서 학술논문상 특별상을 수상하고 있다
△ 아드리안센스 씨가 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31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에서 학술논문상 특별상을 수상하고 있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기후소송에서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5% 감축하라"고 판단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결정이 '정치적 고려'라는 정부 측 주장에 대해서는 "사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법의 한도 내에서' 정치적 재량을 이용했는지 판단할 권한이 있다"며 "이 한도는 유럽인권협약 제2조와 제8조상 보호의무 위반 여부의 판단 권한도 포함한다"고 반박했다.

"네덜란드 국민은 법원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 우르헨다 판결이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더 깊이 인식하고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네덜란드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는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그 분위기를 직접 느끼지는 못했습니다(웃음)."

우리나라 헌재는 기후변화 소송에 대해 3년째 답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이에 올해 3월 청소년기후행동과 법률대리인들은 헌재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그사이 △2019년 네덜란드 대법원 판결 △2020년 아일랜드 대법원 판결 △2021년 독일 헌법재판소 판결에 이어 지난달 미국 몬태나주 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기후소송은 '법의 지배'에 대한 문제니까 빠르게 답을 내기보다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판결이 나오는 데 5년 이상 소요될지도 모릅니다. 정치적인 부분도 연관돼 있어서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고요. 실제 네덜란드에서도 2013년 처음 시작된 기후소송이 2019년에야 끝이 났습니다. 또 현재 유럽인권재판소에서도 기후변화가 인권을 침해했는지에 대한 판결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향후 유럽인권재판소에서 나올 기후변화 판결에 의해 우르헨다 판결의 유럽인권협약 해석이 맞는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결정이 늦어지더라도 위헌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미 네덜란드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기후소송에서 위헌 판결을 내놨는데 한국 헌법재판소만 유일하게 위헌이 아니라고 답하면 부끄러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세계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게 될 테니까요. 지금 한국 헌법재판소는 아시아에서 진보적인 이미지이므로, 더 어려운 결정이 될 것 같습니다."

△ 사진=오인애 기자 
△ 사진=오인애 기자 

네덜란드에 있는 법제도 중 한국에 필요한 제도가 무엇인지 묻자 '상병수당제도'라고 답했다. 이 제도는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 없는 부상이나 질병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전라북도 익산시가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OECD 대부분 나라가 '상병수당제도'를 도입한 상태입니다. 직장인들이 아프면 언제든지 마음편히 쉴 수 있도록 하는 사회보장제도에요. 네덜란드에서는 '팀장님, 저 감기 걸려서 회사 못 가겠어요'라고 하면 곧바로 '알겠어요'라고 답하는 분위기인데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병가는 병을 완치하는 목적이라면, 휴가는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게 목적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러한 휴가를 보장 받으니 쉴 때 부담이 없어요. 한국에도 하루빨리 ‘상병수당제도’가 도입됐으면 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한국에 계속 남아 인재 양성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위해 힘쓸 계획이다.

"현재는 서양사 강의만 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한국에서 법학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도 생기면 좋겠습니다. 수도권 외에는 이러한 기회가 많지 않아서 여의치 않다면 연구원으로라도 법학의 곁에 있고 싶습니다. 연구는 한국과 네덜란드 사회법 관련 주제들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현재는 '한국 과거사 보상법률 관련 논문'과 '네덜란드 상병수당 제도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로 제가 살고 있는 한국이 더욱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작은 보탬이 되고, 외국 학자들이 한국 법에 더욱 잘 접근할 수 있길 바랍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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