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 ①민심에 부합하고 실리도 있는 정책 ②민심에 반하지만 실리는 있는 정책 ③민심에 합하지만 실리가 없는 정책 ④민심에 어긋나고 실리도 없는 정책.

①번 정책은 두말할 필요 없이 강력하게 추진하면 된다. ②번과 ③번 정책은 적극적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제는 ④번 정책이다. 민심에 어긋나고 실리도 없는 정책이 버젓이 입안 되었다는 사실은 소관 부처의 역량을 의심케 한다. 구상과 기획이 민심과 유리돼 있고, 실무와 집행은 행정편의에 젖어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입법 예고했다 중단한 '농막 규제' 정책이 그러하다. 농막은 농사에 필요한 기자재를 보관하거나, 임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1필지 당 6평 이내로 지을 수 있는데, 가설건축물에 속해 건축 허가나 과세 부담이 비교적 적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최근 개인 별장처럼 전용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농식품부가 규제에 나선 배경이다.

그러나 농식품부가 내놓은 대책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다. 200평 미만 토지의 경우 2.1평으로 농막 크기를 규제하면서 휴게 공간은 25%로 일괄 제한했다. 기준을 적용하면 농막 휴게 공간은 0.7평으로 줄어 편하게 앉거나 눕기조차 힘들다. 설상가상으로 야간 취침까지 불허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농촌 현실을 외면했을 뿐 아니라 기본권 침해 소지도 다분하다.

민심은 들끓었다. '5도2촌' 생활을 즐기는 주말농장족(族)과 300평 미만 토지를 소유한 농민들의 반발이 특히 거셌다. 당황한 농식품부는 설명자료를 배포하고 "농작업 중의 야간 취침은 허용된다", "농업인들은 기존과 같이 농막을 지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극심한 인구 공동 현상을 겪는 시골 현실과 동떨어진 근시안적 대책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부입법지원센터 홈페이지에는 졸속행정을 질타하는 글이 쏟아졌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자, 해당 정책은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조나라 장수 조괄은 병서만 읽고 실전 경험이 없는 상태로 출전했다가 장평(長平)에서 진나라에 크게 패하였다. 진나라는 사로잡은 포로 40만 명을 갱살(坑殺)했는데, 그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조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이후 경륜 없는 이론가들이 정책을 쥐락펴락 하는 상황을 일컬어 '지상담병(紙上談兵)'이라 불렀다.

농식품부는 뒤늦게 현장 목소리와 이해관계자 의견을 폭넓게 청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민의에 부합하는 실리적인 정책이 나오기를 바란다. 민심은 천심이다. 누구도 민심을 거스를 순 없다. 

△농식품부가 19일 발표한 '농막규제'를 골자로 하는 농지법 시행규칙 개정령안에 대한 입법예고 중단 공고   
△농식품부가 19일 발표한 '농막규제'를 골자로 하는 농지법 시행규칙 개정령안에 대한 입법예고 중단 공고   

/왕성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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