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보복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실패요, 다른 하나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한 옆 사람의 성공이다. 매일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함께 일을 하던 친구나 동료가 갑자기 승승장구를 하면서 잘 나가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묘한 시기심을 느낀다.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 한 켠엔 깎아 내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누구도 이런 시기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 고약한 건 시기심이 친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더 잘 드러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지구 건너편의 백만장자에게는 시기심과 질투심을 느끼지 않는다.

시기심은 남들이 자기만큼 성공하지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녹이 쇠를 갉아 먹듯이 시샘은 자기 자신을 갉아 먹는다. 시기심은 가장 어리석은 감정이고, 엄청난 정신력의 낭비다. 고통만 많을 뿐 유일하게 재미를 느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기심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만, 그것을 피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능력을 찾아 그 범위 내에서 스스로를 통제하고 지배하면 된다.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이라도 고통이나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당신이 선망하는 사람은 멀리서 보기 때문에 멋져 보이고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화려해 보이는 그런 사람도 무대 뒤에서는 당신과 같은 고통과 열등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대통령이나 재벌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고통이 있다는 걸 안다면, 시기심의 맹렬한 기세도 한풀 꺽일 것이다.

시기심에 휩싸여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도 큰 고통이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시기심을 받는 것 또한 억울하고 괴로울 것이다. 자신을 질시하고 물어뜯으려는 사람이 바로 가장 친한 친구나 동료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배반감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 온다. 그러나 누군가 자신을 미워하고 질시한다는 것은 한 발 앞서 나간다는 것이고 그만큼 베풀 것이 많다는 뜻이다.

시기를 받는 자신에게도 책임은 있다. 욕망의 대상을 먼저 획득한 자는 약자를 배려할 의무가 있다. 이는 가진 자의 의무이며, 그걸 배려라 부른다. 누군가의 질투를 받을 만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면,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해 행동하라. 다른 사람이 바라는 것을 먼저 가졌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이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듣는 사람이 느끼는 박탈감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있듯이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절대 잘난 척을 하거나 자신을 떠벌리지 않는다. 남을 배려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미움이나 시기를 받지 않는다.

 

 

 

/윤경 변호사

서울회, 더리드 공동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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