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so happy to see all of you again here in Seoul! (여러분을 이 곳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서 너무 좋아요!)”

이것은 9월 마지막 한 주 동안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된 IBA 연차 총회 기간 동안에 제가 외국 변호사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 중 하나였습니다. 이전에 2018 IBA Rome 연차 총회를 비롯해서 IAKL이나 다른 컨퍼런스에서 만났던 외국 변호사들과 2019년에 서울에서 다시 보자고 하나 같이 약속을 하고 헤어졌던 터라, 이번에 실제로 서울에서 다시 보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드디어 약속을 지킨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대한변협의 ‘IBA 서울 총회 준비 특별위원회’의 위원으로 특위에 참여하게 되니, 왠지 제가 호스트가 되어 그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은 근거 없는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 청년변호사 연수(Young Lawyers’ Training) 우측에서 패널 참가 중

IBA 총회는 Opening Ceremony로 시작한다고 대부분의 분들이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Opening Ceremony 전날에 Young Lawyers Committee(YLC)에서 주관하는 IBA Young Lawyers’ Training부터 이미 참가자들 간의 열띤 토론과 질의 응답, 그리고 네트워킹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중 Bullying and Sexual Harassment in Legal Profession이라는 조금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마지막 4번째 세션의 패널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The global voice of the legal profession’이라는 IBA의 기치에 걸맞게 IBA LPRU(Legal Policy & Research Unit)가 전 세계 130개국 이상에 있는 7,000명 이상의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심도 있게 작성된, 130페이지에 달하는 연구 보고서를 바탕으로 동 세션을 준비하기로 하였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직도 여러 나라에서 많은 수의 법조인들이 성희롱이나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그럼에도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대한 조사와 연구를 포함하여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으로 관련한 각종 컨퍼런스를 IBA에서 진행하여 왔다는 점에 더하여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사항은 제가 발표한 내용에 대한 다른 패널들 및 청중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동 세션 주제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주변에서 보았던 사례들을 발표했는데, 법조계의 성희롱이나 괴롭힘 관련 컨퍼런스에서 경험담을 직접 이야기하는 발표자는 지금까지 잘 볼 수 없었다는 것이 패널들의 코멘트였습니다. 발표자 자신부터 먼저 직접적인 사례들을 공개함으로써 좀 더 허심탄회한 논의를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제가 그렇게 먼저 이야기를 시작해 준 것이 좋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세션이 끝난 후 네트워킹 자리에서는 폴란드에서 오신 한 변호사님이 제가 한 발표 내용과 비슷한 일을 본인의 나라에서도 겪는다면서 먼저 말을 걸어 주셨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관점에 지나지 않는 내용이지 않을까 해서 발표를 준비하면서도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여러 청중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서 안심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IBA 공식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는 Opening Ceremony가 9월 22일 일요일 저녁에 열렸습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이 행사에서 과연 어떤 주제와 내용으로 한국을 소개할까 무척 기대했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잘 준비된 것 같아 저도 즐겁게 참여했습니다. 오행(五行), 즉 火(불), 水(물), 木(나무), 金(쇠), 土(흙)의 각 테마에 따라 5개 부스가 있고, 그 테마에 맞는 공연 및 음식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공예나 다도 같은 전통 문화를 포함해서 노래방이나 K-pop과 같은 대중 문화 체험까지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각 부스들을 모두 돌아보고 싶었지만, 여러 사람들과 인사하고 넋 놓고 공연을 보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부족해서 각 부스의 맛있는 음식들을 다 맛보지 못하고 행사장을 나와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같이 다녔던 외국 변호사들보다 제가 더 신났던 것 같습니다..)

230여개에 달하는 많은 공식 세션들이 있었지만, 당장 제 기억에 남는 세션을 떠올리라면 ‘A conversation with Hyeonseo Lee’라는 대담이 생각납니다. 이현서 씨는 사실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많이 알려진 탈북자 출신의 활동가입니다. 한국에 왔으니 당연히 북한과 관련한 주제는 여러 세션에서 다룰 것이라 예상은 했었습니다만, 이 대담에서는 외국 변호사들의 이러한 관심을 반영하듯이 총회 행사 장소 내에서 가장 큰 강당을 가득 메우고도 자리가 부족해서 통로에 앉아서 들으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녀와 그 가족들이 북한을 탈출하면서 겪었던 믿기 어려운 일화들을 듣고 있자니, 탈북자들의 생활이나 그들의 과거에 대해서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들과 너무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잘 알지 못했던, 혹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세션은 Technology Law Committee에서 주관한 ‘Agile software projects: lessons learn, dos and don’ts’이었습니다. Agile software 개발은 기존의 heavyweight waterfall-oriented 방식과는 대비되는 소프트웨어 개발 원칙, 형식, 업무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즉, 처음부터 개발과 관련한 사항들을 다 정해 놓고 시작하는 것이 아닌, 개발 대상을 여러 작은 기능으로 분할하여 각 기능에 대해 일정 주기마다 반복하여 개발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당연히 계약서가 작성되어야 하지요. 변호사들에게 계약서란 계약 목적에 대해서 가능한 상세히 정의하고 사후에 발생 가능한 분쟁들의 해결 방법들을 사전에 합의하여 이를 정확한 언어로 담아내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agile software 개발 방식은 기존에 통용되는 계약서의 기능과는 정 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는 바,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계약서에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향후 transaction lawyer들의 과제로 남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패널로 참석하신 agile 개발자 분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의 개발 주기 혹은 프로젝트의 한 period가 종료될 때마다 업무 관련자들이 모두 모여 계약서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 가며 수정 내지 새로운 내용을 다시 작성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향후 실무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정착될 지 궁금합니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관계로 업무와 관련 있어 선택한 세션이었지만, transaction lawyer의 전반적인 역할이나 업무 방향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해당 분야의 비법조인 전문가를 초청해서 업계의 상황이나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변호사들과 견해를 교환하는 방식은 흥미로우면서도 쟁점 사항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비단 이 세션 뿐 아니라 다른 세션에서도 업계 전문가를 초청해서 진행하였는데, ‘Self-driving vehicles and regulation’에서는 한국교통안전공단 자율주행자자동차센터 팀장 및 현대자동차 부사장님이 패널로 참가하셔서 논의를 더 풍부하게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이번 총회에서도 역시 저녁마다 여러 로펌과 단체 주관으로 많은 reception이 있었습니다. 주변의 많은 변호사들이 어디를 가야할 지 모르겠다고 선택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한국 변호사로서, 또 IBA 서울총회 준비특위 위원으로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행사, 바로 Korean Night Reception! 음식도 너무 맛있었고 준비된 공연들도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내내 홀을 누비던 엿장수님의 등장, 각종 약초주과 전통 의상 체험들은 센스 있는 깨알 컨텐츠였습니다. 같이 다녔던 외국 친구들이 가장 재미있어 했던 부분이 전통 의상 체험이었는데, 즉석에서 사진까지 인화해 주니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좋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reception에 조금 피곤해졌다면, 마음 맞는 친구분들 몇몇과 같이 조촐한 술자리를 가지는 것도 추천합니다. 저는 이번 총회에서 친해진 변호사 친구들과 총회 마지막날에 따로 자리를 갖고 밤 늦게까지 수다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의 업무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가족, 취미, 종교에 대한 이야기… 이런 기회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고, 앞으로도 바다 건너에 살고 있는 좋은 친구로 서로 남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총회 한 주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지식과 생각들을 얻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다시 돌아보면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한 주가 후딱 지나갔었지만, 행사장 안 점심 시간에 옆 자리에 앉아 이야기했던 캄보디아 주니어 변호사님, 관광할 곳을 추천해 달라는 말에 한국사 이야기까지 해 주게 된 호주 변호사님, 그리고 호텔로 가는 택시를 대신 불러 주려다 얼떨결에 그 택시를 타고 한남동까지 같이 가게 된 호주의 로스쿨 원장님까지 새록새록 모두 기억이 납니다. 서울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변호사들의 올림픽, IBA Annual Conference라는 점만으로도 그 의미는 충분했지만 대한변협의 IBA 서울총회 준비위원으로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즐거웠습니다. 같이 수고하신 준비위원분들과 다시 반갑게 만날 자리가 있다면 좋겠네요. 더 많은 한국 변호사들이 국제 행사에 활발히 참가하여 즐겁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류정화 변호사
서울회·SAS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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