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는 정해졌는가. 여름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계절의 질문에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알려주는 듯하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 삶의 무거움을 벗어던지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 작가에게 여행은 자유를 위한 선택이었다. 여행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엄습해오는 어두운 그림자를 지워버릴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 작가는 사회주의 사상이 투철했던 대학시절 우연히 방문하게 된 중국에서 내면에 형성된 중국과 다른 현실의 중국을 목격하며 갖게 된 충격이 자신을 작가의 삶으로 안내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여행의 이유가 여행의 길이 작가의 인생을 살찌워준 윤택함이었다고 설명해줬다면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은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가야하고, 왜 가야하는지 그리고 여행의 방법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여행안내서다. 여행은 혼자가야 한다. 여행의 길은 익숙함에 대한 탈출이며 반란이다.

외부인들과 달리 부산시민들에게 해운대는 여행지가 될 수 없다. 보통은 여행은 새로운 모국을 발견하는 과정이며, 과거와 나의 정체성 간 연속성을 발견시키는 길이라고 정의했다. 낯선 장소에서 방황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여정이 시작될 때 새로운 인생의 발걸음을 걷게 된다.

변호사들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무형의 자산을 가진 이들, 철학자, 제자백가, 의사들이 유랑했던 것처럼 리걸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가는 변호사의 운명도 유목민과 같다. 여행은 주어진 길인 듯하다. 그렇다면 김영하와 보통의 여행산문이 던진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변호사들의 여행기는 무엇일까?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방송이 해답을 주는 듯했다. 프랑스는 소년범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교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반복된 일탈과 탈선으로 새겨진 주홍글씨의 부끄러움으로 사회적응에 실패한 그들에게 프랑스 정부는 소년원 대신 이국땅에서 수개월간 2000킬로미터를 횡단하도록 했다.

방송에 등장한 소년범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감독자와 대화하며 새로운 자아를 발견한다. 실제 2000킬로미터 쇠이유(Seuil) 길을 걸은 여행객 소년범들의 재범률은 15%로 뚝 떨어졌다고 한다.

쇠이유를 설계한 사람은 프랑스 기자 베르나르 올리비에였다.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우울증에 빠진 60대 남성이 선택한 것은 2000킬로미터 거리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고 수년 후 실크로드 길을 걷는 일이었다. 실크로드를 걸으며 맞닥뜨린 전쟁과 짐승의 위험 그리고 길을 걸으며 사귀게 된 1만 5000명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내 그 수익금으로 그는 쇠이유를 운영했다. 그는 지금도 걷고 있다.

쌓여진 기록무더기 위에 지쳐버리고, 범죄와 채무의 감옥에 갇힌 이들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감옥에 갇힌 변호사의 쇠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올 여름 내게 진귀한 경험과 삶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할 여행의 길, 새 여행지를 찾아본다.

 

 

/박상흠 변호사·부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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