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

1. 사안의 개요*와 쟁점

*사안의 개요는 대상판결 설시 내용을 중심으로 이 글의 주제와 관련되는 부분만 거칠게 축약하였습니다.

 

가. 사안의 개요

(1) 피고 회사는 2009년 1월부터 2010년 2월까지 한시적으로 관리직 직원에 대하여 이 사건 상여금을 매월 지급하였던 것을 제외하고는 상여금지급규칙에 따라 관리직 직원과 생산직 직원 모두에 대하여 동일한 지급률과 지급 기준을 적용하여 이 사건 상여금을 지급하였다.

(2) 피고와 노동조합은 2008년 10월 8일 체결한 단체협약에서 통상임금에 산입될 임금의 범위를 정하면서, 이 사건 상여금이 근로기준법 소정의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 사건 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입에서 제외하였는데, 피고와 노동조합은 이전에도 이와 같이 단체협약으로 통상임금의 산입 범위를 정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3) 피고는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아닌 관리직 직원들에 대해서도 이 사건 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입에서 제외한 단체협약을 적용하여 이 사건 상여금이 제외된 통상임금을 기초로 법정수당을 산정·지급하여 왔고,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송 제기 전까지는 원고를 비롯한 관리직 직원들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4) 원고는 이 사건 상여금 역시 통상임금으로 보고 이를 포함하여 재산정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미사용 연차휴가수당 등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나. 쟁점

(1) 이 사건에서 쟁점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 그리고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을 위반하여 체결된 단체협약 등 노사합의가 무효인 경우 그 무효 주장이 신의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지 여부였다.

(2)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에 관한 법리는 대상판결을 통하여 확실해졌으나, 문제는 후자의 쟁점에 대한 대상판결 판단의 당부이므로, 이 글은 여기에 관하여 간략히 살펴본다.

 

2. 강행규정을 위반한 노사합의 무효 주장의 가부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

*이 점에 관한 대법원의 판결은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으로 갈리는데, 죄송스럽게도 지면 문제로 거칠게 축약하였습니다.

 

가. 다수의견

(1) 단체협약 등 노사합의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하여 무효인 경우 그러한 주장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음이 원칙이다. 그러나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을 갖춤은 물론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하는 것을 수긍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노사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

(2) 우리나라의 실태는 임금협상 시 임금 총액을 기준으로 임금 인상 폭을 정하되, 그 임금 총액 속에 기본급은 물론, 일정한 대상 기간에 제공되는 근로에 대응하여 1개월을 초과하는 일정 기간마다 지급되는 상여금(이하 ‘정기상여금’), 각종 수당, 그리고 통상임금을 기초로 산정되는 연장·야간·휴일 근로 수당 등의 법정수당까지도 그 규모를 예측하여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방식의 임금협상에 따르면, 노사 간에 합의된 임금 총액의 범위 안에서 그 취지에 맞도록 각 임금 항목에 금액이 할당되고, 각각의 지급형태 및 지급시기 등이 결정된다는 의미에서 상호 견련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정기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전제 아래에서, 임금협상 시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는 실무가 장기간 계속되어 왔고, 이러한 노사합의는 일반화되어 이미 관행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3) 노사합의에서 정기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오인한 나머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 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전제로 임금수준을 정한 경우, 근로자 측이 앞서 본 임금협상의 방법과 경위, 실질적인 목표와 결과 등은 도외시한 채 임금협상 당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사유를 들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가산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법정수당의 지급을 구함으로써,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 외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종국적으로 근로자 측에까지 피해가 미치게 되어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추어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경우 근로자 측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되어 받아들일 수 없다.

 

나. 반대의견

(1) 신의칙은 강행규정에 앞설 수 없다. 신의칙의 적용을 통하여 임금청구권과 같은 법률상 강행규정으로 보장된 근로자의 기본적 권리를 제약하려 시도하는 것은 헌법적 가치나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에 정면으로 반한다.

(2) 근로자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노사합의를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이 갖추어졌다고 볼 수 없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노사합의의 관행이 있다고 볼 근거가 없음은 물론이고, 만에 하나 그런 관행이 있다고 한들 그것이 근로자에 의하여 유발되었거나 그 주된 원인이 근로자에게 있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근로자가 이를 무효라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용자가 신뢰하였다는 전제 자체가 증명된 바 없지만, 그 ‘신뢰’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정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3) 근로자가 받았어야 할 임금을 예상외의 이익으로 취급하여 이를 되찾는 것을 정의와 형평 관념에 반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정의 관념에 반한다.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는 모두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내용으로서, 도대체 추가 부담액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그러한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사용자는 상여금도 그 성격에 따라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음을 알았다고 보이고, 사용자가 상여금의 통상임금 해당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더라도 이를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선의라고 볼 수는 없다.

 

3. 다수의견의 부당성

지극히 타당한 위 반대의견에 사족을 몇 개 보탠다.

 

가. 신의성실의 원칙은 만능의 일반 법원칙이 아니거니와 강행법규를 넘어서는 효력을 가진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나. 권력을 ‘법적 근거 없이 타인의 의사에 반하여 타인에게 자신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라면, 법치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존재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법치주의는 행위자의 의사에 반한 어떤 행위를 강요하기 위하여 늘 법적 근거를 필요로 한다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판결을 통하여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에 반하는 합의에다 신의성실의 원칙을 빌어 그 효력을 부여하고 있다. 법원의 이와 같은 판단은 권력 행사이지, 법률의 해석과 적용이라는 사법 본연의 작용이 될 수는 없다. 신의칙이 강행법규보다 우위의 효력을 갖는다는 논리적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다. 다수의견의 논리를 따르면, 사회질서에 반하거나 불공정행위에 해당하여 무효인 법률행위라도 신의칙에 반하는 경우 그 무효를 주장할 수 없다는 주장도 가능해질 것이다.

라. 근로기준법에 따른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한 임금 등을 지급한다고 하여 실제로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그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게 된다면 그 기업은 폐업하는 것이 온당한 것이지, 법관들의 법적 판단(그것이 법적 판단인지도 의문이거니와)을 통하여 구제할 수 있는 것도, 구제되어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그것도 근로자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 요구를 희생하는 방식으로는 더더욱 불가한 일이다.

 
 
 
/곽용섭 변호사, 충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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