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단행본 제목은 ‘친일파 선언’이라고 선언했다. 작년 여름 청와대 조 아무개의 ‘죽창가’에 반사적으로 보인 반응이다. ‘친일파’로 찍히면 회복이 불가한데 어쩌려느냐는 핀잔이 넘쳐났다.

학급 아이들의 일제 ‘톰보우’ 연필을 빼앗아 기어이 중간을 분질러 버리고 마는 초등학생이었다. 삼촌의 일본 출장 선물을 졸지에 뺏긴 아이들 심경이 어땠으랴. 반일정신에 충일한 반장의 악행에 담임선생님도 속수무책이셨다. 남산 언저리 반공연맹에서 2시간 ‘반공교육’을 받고 ‘이수증’을 제출하여야 ‘단수여권’이 발급되던 시절, 가족 구성원의 해외 출장이 온 집안의 자랑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어린 소녀가 일본군 패거리에게 위안부로 끌려가는 영화 ‘귀향(鬼鄕)’ 제작진에게, 영화를 보지도 않고, 무조건 찬사부터 보냈다. 어느 감독에게는, 재미작가 이창래의 위안부 소설 ‘제스처 라이프(Gesture Life)’를 소재로 아시아 여성들과 네덜란드 여성까지 피해자로 묶은 ‘글로벌 프로젝트’를 기획하자고 바람 잡았다. 그래서 감독은 이창래와 몇 번 메일을 주고 받았다. 오래 전, 아시아평화기금을 두고 정대협 내부에 불협화음이 생겨 온건한 운동가들이 조직을 떠났다는 조각 글도 읽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할머니들, 당장 몇천만 원 챙겨드리는 쪽이 맞다는 호소에 살짝 흔들렸지만, 원칙론자들의 입장이 있으려니 넘어갔다. 전시(戰時) 여성 인권 문제를 -유럽도 미국도 제치고- 대한민국 여성 운동가들이 U.N.에서 제기하고 성과를 이루었다는 사실에 웬만한 허물은 덮어 주려 했다. 약간 남세스럽지만 그 것이 역사의 발전 방향이려니 여겼다.

『제국의 위안부』 사건에 소스라치듯 놀랐다. 백주대낮에 연구자가 ‘이견(異見)’을 밝혔다고 ‘출판금지’ 청구에, ‘위자료’ 청구에, ‘형사고소’라니. 홧김에 증언집부터 일본 외교사까지 잡다하게 읽었다. 급기야 ‘해외 활동의 진정성’조차 의심을 품게 되었다. 신청인·원고·고소인은 ‘9인의 위안부’인데, 단연코 그분들은 독해의 여력이 없다. 가난해서 못 배워서 위안부가 되었던, 이제는 90 무렵의 할머니들이다. 그렇다면 『제국의 위안부』를 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주체는 필경 ‘뒤가 구린’ 지원단체이리라. 출판금지가처분 결정, 위자료 판결, 형사 명예훼손 1, 2심 판결 중에 형사 1심 무죄판결 하나만 성실하다. 오래오래 고심한 흔적이 판결문에 뚜렷하다. 어느 비전공자는 그 방청기를 논문으로도 기록하였다. 정대협 방어에 여성단체와 집권정치 세력이 나섰다. “정대협을 비판하면 친일파”라는 엄중한 훈계가 칼춤을 춘다. 다음 책 제목을 ‘친일파 선언’으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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