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이 정한 ‘평화외교와 다자주의의 날’인 4월 24일.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의 수도인 제네바에서 보는 코로나19 상황은 비장하고 씁쓸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한지 3개월, 세계적 대유행을 선포한지 50여일이 지난 지금, 보건시스템 자체가 열악한 중남미, 아프키라 지역 등으로 확산과 여타지역의 추가적 2, 3차 유행 우려까지, 상황은 살얼음판이다. 사실 글로벌 감염병은 환경, 개발, 테러리즘 등 다른 글로벌 이슈처럼 국제사회 공동 대응이 필요한 분야로 인식되어 왔고, 국제보건규정(IHR)과 같은 규범과 국제 보건 거버넌스 체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응에서 동 기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표적으로 1969년 처음 만들어진 국제보건규정은 그간 여러 글로벌 감염병을 겪으면서 발전해 왔고 2005년 개정된 내용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 규정은 국제 교류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전염병의 국제적 확산을 방지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하고 있다. 2005년 국제보건규정은 관리 대상 질병 범위를 확대하고,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할 권한과 개별국가의 제한조치 보고 등 WHO의 권한을 상대적으로 강화시켰다. 이외에도 당사국 역량 강화 지원, 인권 보호 명문화도 포함되었다. 2007년 발효된 동 규정에는 WHO 회원국 194개국과 비회원국인 교황청, 리히텐슈타인 등 총 196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하지만 동 규정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총괄관리자인 WHO에 강제 수단이 없고, 감염병 대응에 있어서 국가 간 능력 차이는 컸다. 연례 국별 자체 평가 보고, 감염병 조치의 즉각적인 통보, 관련 정보의 신속한 제공 등의 규정도 실제로는 효과적으로 이행되지 못했다. 예산의 70~80%를 회원국의 자발적 재정지원에 의존하는 WHO의 한계는 코로나19 대응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났다. WHO 사무총장이 ‘국제연대(Global Solidarity)’라는 다분히 정서적 개념에 호소하고 있는 것도 현존 국제규범과 거버넌스 체계만으로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반증이다.

물론 국제 보건 거버넌스 사회가 마냥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일단 위기극복이 최우선이라는 공감대하에 WHO 및 유엔 등 국제기구, 제약업계와 각종 인도지원기구 등이 연합하여 다양한 이니셔티브를 마련하고 협력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WHO는 전략적대응계획(SPRP), 국제연대기금, 백신과 치료제 개발협력을 위한 ACT 이니셔티브 등을, 유엔은 사무총장 코로나19 기금, 글로벌인도적대응계획(GHRP) 등을, 빌게이츠재단을 위시한 민간 재단과 기업들도 다양한 형태로 공동 협력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노력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동참과 지지가 긴요하다.

아울러 기억해야 할 것은 또 다른 신종감염병 또는 코로나19의 변종바이러스로 인한 제2, 3의 위기 상황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현재의 국제 보건 거버넌스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철저한 코로나19 대응 분석을 통해 교훈과 시사점을 정리하고 이를 국제보건규정의 개정 등을 통해 국제보건 거버넌스 체제를 강화하고 개선해야 한다. 일례로 최초발생국 및 여타국가의 의무를 명확히 하고 이를 이행치 못할 경우의 최소한의 강제적 수단이 마련돼야 하며, 평상시에도 진단, 백신, 치료와 관련한 공공재에의 투자와 협력 메커니즘이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사전에 필수 인력과 필수품목의 국제적 이동과 관련한 효과적 운용시스템을 구축하고, 각 나라는 투명성과 비례성에 기반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며, 건실한 보건시스템을 구축할 유인이 마련돼야 한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험이 이러한 숙제에 좋은 답안지를 제출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신희선 주제네바대표부 참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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