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후변화 분야에서는 ‘그레타 툰베리(17)’라는 스웨덴 소녀의 외침이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마도 앳된 소녀의 당차고도 용감한 호소가 사람들로 하여금 지구 온난화의 재앙적인 상황이 얼마나 우리들의 코 앞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지를 현실감 있게 들여다보게 한 것 같다.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 이 젊은 환경운동가는 “부유한 국가들이 급속도로 방출량을 줄이고 가난한 국가들이 필수적인 전환을 이루도록 도와 이들의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고, 그 전에는 주요국 중진 국회의원들에게 “미안하지만, 어른들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꾸짖었다.

사실 그레타 툰베리의 지적은 핵군축 분야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부유한 국가’를 ‘핵보유국’으로, ‘가난한 국가’를 ‘핵을 가지지 않은 국가’로 치환하면 된다. 또한, 핵군축과 안보 문제는 공기와도 같아서 안정적으로 공급이 유지될 때에는 그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양적 ·질적 임계치에 도달하면 우리 삶에 심각한 장애가 유발되는 점에서 유사하다. 한 가지 차이점은 기후변화와 달리 핵무기는 단 한 순간에 인간의 삶과 지구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미국 핵과학자회(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가 1947년 설정한 지구 종말시계(Doomsday Clock)도 ‘핵무기’와 ‘기후변화’ 때문에 인류 종말인 ‘자정’까지 불과 100초를 남긴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1945년 이래 실전에 사용된 적이 없어 그 위력과 피해가 눈이 보이지 않을 뿐, 핵무기 사용의 위협은 지금도 여전하다. 안보환경의 불안정성과 신기술의 발전으로 예측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그런 측면에서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현재와 미래 세대의 평화와 안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군축 논의에 지속적인 활기를 불어 넣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정부는 작년 10월 유엔 총회에서 ‘청년과 군축 및 비확산’이라는 제하의 결의를 주도적으로 작성하여 컨센서스 채택을 이끌어 냈다. 군축 논의의 미래가 우리 젊은이들에게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보라는 실질적인 과실로 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군축 논의에 청년들을 보다 개입시키고, 교육시키고, 권한을 주어 참여하도록(engage, educate and empower) 각 국이 노력하자는 내용의 결의이다. 우리나라의 제안에 84개국이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하여 높은 공감대를 보여주었다.

한편, 올해는 군축 다자주의의 시험지가 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핵확산금지조약(Nonproliferation Treaty) 발효 50주년 및 5년 만에 돌아오는 평가회의(review conference)이다. 올해 4월 말부터 한 달 간 NPT 회원국들(191개국)은 뉴욕에 모여서 지난 5년간 핵군축, 비확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측면에서 조약의 이행 성과를 짚어보고 향후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 50년간 NPT 조약이 있었기에 핵보유국(공식적으로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과 핵을 가지지 않은 국가들이 공히 핵무기를 확산하지 않도록 하고, 핵보유국들은 일정 부분 핵군축 및 군비통제 노력을 하고, 핵을 가지지 않은 국가들은 핵 보유 옵션을 포기하는 대가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핵무기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에 대한 생각은 국가들이 처한 안보 상황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상황이다. 더욱이 올해 NPT 평가회의는 이란과 북한의 비확산 문제, 미국-러시아간 유일한 핵군비통제체제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의 불안정성 노정 등 암울한 국제안보환경 속에서 개최될 전망이다.

거기에다 2015년 평가회의에서는 2010년과 2000년에 도출한 핵군축 및 비확산 이행계획을 발전시키기는커녕, 국가들의 이견으로 하나의 결과문서를 합의하는데 실패했다. 때문에, 두 번의 연속된 평가회의에서 결과문서 도출에 실패할 수는 없다는 위기감과 동시에 다자주의를 통해 핵보유국들의 실질적인 행동을 끌어내기가 불가능하다는 패배주의가 동시에 번져 있는 상태이다. 금번 NPT 평가회의야 말로 국가들의 복잡한 이해관계 방정식에 대한 젊은이들의 창의적이고 유연한 대응방안에 대한 호소가 필요할 수 있다.

그간 핵무기(핵무기금지협약)나 특정 재래식 무기(대인지뢰금지협약, 특정확산탄금지협약 등)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군축의 범위를 넓혀 온 움직임의 배경에는 항상 ‘젊은’ 시민사회, 학계·과학계 전문가들의 역할이 컸다. 우리 정부는 NPT 평가회의에서도 우리 청년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핵군축·비확산 정책의 목소리가 더 담길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나갈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는 주요 핵보유국에 둘러싸인 국가로서 국제안보환경의 개선과 함께 점진적인 핵군축을 추구하며, NPT 평가회의를 앞두고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쌓아나갈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다자 군축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비록 국제사회 및 한반도 안보 환경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가질 수 있는 핵군축에 대한 입장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깨어있는 젊은이들이 각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목소리를 내어 정책에 참여하는 한 군축 다자주의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다.

 
 
/채연주 주제네바대표부 1등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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