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카드를 청와대가 또 만지작거린다는 기사가 조간에 떴다. 도쿄올림픽 보이콧 주장은 여러 번 등장했다. 도쿄의 방사능이 위험 수준이라더니, 도쿄행 여행을 막자는 주장으로까지 튀었다. 욱일기도 논란이었다. 올림픽경기장에서 제국주의 침략 상징이 펄럭이게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가 욱일기 사용이 문제없다고 발표하자 중국·북한과 연대하여 국제여론을 움직이겠다고도 했다. 2018년에도 욱일기 게양을 시비하여 자위대가 ‘대한민국 해군 국제 관함식’ 참가를 포기했었다. 그런데 ‘햇살이 세상으로 뻗는’ ‘욱일(旭日)’ 디자인은 에도(江戶)시대부터 일본인들이 애용하던 문양이라고 한다. 우키요에(浮世繪)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욱일기를 군기(軍旗)로 지정하였다. 1870년에 육군이, 1889년에는 해군도 따라 사용했다. 제국주의 전쟁을 거치면서 유명세(?)를 탔으나 패전 후에도 자위대 군기로 이용되고 있다. 2차대전의 책임으로 폐기된 나치의 상징 ‘하켄크로이츠(Hakenkreuz)’와는 경우가 다르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그것이 “아리아 인종의 승리와 반유태주의의 상징”이라고 공언했다.

텐진(天津)의 남개(南開)대학교는 작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주은래와 후야오방을 배출한 명문 대학이다. 조선의 독립운동가 청년들을 학생으로 받아 ‘보호’하기도 하였다. 제국주의 군대는 1937년 6월 반일시위를 핑계로 캠퍼스를 맹폭격하여 건물 3동을 박살 냈다. 대놓고 도서관을 불 질러 잿더미로 만들었다. 학교 상징인 종(鐘)을 반출하여 아직도 일본 어느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다고 전한다. 제국주의 군대가 밀려오자 남개대는 곤명(昆明)으로 피난하여 북경(北京)대, 청화(淸華)대와 ‘국립남서연합대학’을 구성했다. 남개대 법학원은 100주년 행사 ‘동북아 미래 법치 심포지움’에 한국과 일본 법학자들을 대거 초청하였다. 개막식에서 ‘국립남서연합대학’이 한국전쟁 중의 ‘전시연합대학’의 경험과 겹친다고 운을 떼고, 일본 학자들 앞이라, 바깥 사정이 어려워도 연구와 교육이 중요하다는 정도로 두리뭉실하게 축사를 끝냈다. 1박 2일 행사를 마무리하고 떠나는 길에 남개대 교수에게, 일본과의 악연을 어떻게 극복하였냐고 물었다. 지나간 역사는 지나간 역사이고 앞을 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고, 개교 80주년 기념행사에는 일본 교수들이 ‘사쿠라’ 열 그루를 가져와 심었는데 “잘 자라고 있다”고 했다.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제국군대의 잔학행위는 중국 인민에게 집중됐었다. 그런데 장개석은 1945년 8월 15일 중경(重慶)에서 ‘일본군과 일본인 거주자의 안전 귀국 보장’을 자국민에게 라디오로 연설했다. 전쟁 배상까지 포기하며 행한 이덕보원(以德報怨)은 세계사적 이벤트였다. 지소미아 기사 위로, 주름투성이 남개대 원로교수의 발음 ‘사.쿠.라.’가 명징하게 겹쳐 들렸다.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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