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한이 정해져 있는 변호사 업무가 쌓여 있는데,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거나 몸이 아프거나 하는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아픈 정도에 따라서 업무에 대한 변호사의 대응이나 생각의 흐름은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대략 3단계 국면으로 나뉘게 된다.

첫째 국면, 몸이 평소와 달리 아픈 것은 확실히 감지하고 있지만(가벼운 몸살이나 감기 등) 그래도 병세에 대항하여 서면 작성 등이 가능한 경우다.

진찰을 받고 처방약을 복용하고 직업적 사명감에 따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게 된다. “변호사로서 서면이나 자문의 기한은 반드시 지켜야지”하는 직업적 사명과 더불어 “나는 아픈데도 일을 하는 제법 괜찮은 변호사야”하는 자부심을 품는 덕분에, 아프지 않을 때 못지 않은 강화된 집중력으로 나름 일을 적기에 처리하게 된다.

둘째 국면, 아픈 정도가 더 심해져 업무 처리가 어려운 경우라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병세가 첫 단계보다는 강해서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업무의 기한을 맞추기 어렵고 클라이언트와의 연락을 원활히 유지할 수 없는 상태다(아주 심한 숙취 등). 이때는 업무 처리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판단력은 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업무의 기한을 맞추지 못해서 어떻게 하지” “이번 일 때문에 클라이언트에게 밉보이는 거 아닌가”하고 걱정을 하게 된다.

셋째 국면, 정말 많이 아파서 몸져눕는 단계이다. 이쯤 되면 업무에 관한 걱정을 넘어 포기 단계가 된다. 인생에서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는지 자아성찰을 하는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그래, 돈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아니야” “주변에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최고지”하고 생각하며 끙끙 앓는다. 재밌는 점은 건강이 회복되면 돈이 다시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지금 위 첫째 국면에 해당하는 상태에서 글을 작성하고 있다. “나는 아픈데도 일을 하는 제법 괜찮은 변호사야.”

 

 

/김응철 변호사

서울회·로베리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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