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국 대법원이 내린 일본강제징용배상판결에 대한 반발로 일본은 반도체 소재 수출을 금지했다. 반작용으로 한국민들의 일본관광은 대폭 축소됐다. 줄어든 일본의 관광수익만으로도 강제징용배상금을 마련하기에 넉넉했으리라 짐작된다.

양국의 갈등을 보며 1919년 조선반도에서의 일본사법부 결정을 떠올리게 됐다. 고종 선종 후 민족대표 33인은 3.1운동을 일으켜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지배에 항의했다. 일본 검찰은 집회를 개최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한 집회주도자 33인을 각각 내란교사죄와 출판법위반으로 기소했다. 일본법원의 관할권 법리 혼선으로 33인의 피고인이 재판정을 분주하게 오가던 중 고등법원은 내란선동을 인정할 수 없다며 사건을 경성지방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허헌 변호사였다. 허 변호사는 3.1운동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함흥에 석 달 동안 머물며, 침식을 잊고 수만 페이지의 기록을 밤낮으로 연구했다. 그는 고등법원의 결정서 주문에 경성지방법원을 본 건의 관할 재판소로 ‘지정’한다는 문구에 주목했다. ‘송치’가 아닌 ‘지정’이라는 용어로는 이송 처리가 불가하며, 이는 공소각하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변론을 펼쳤다. 일본 검사는 당황했고, 일본인 나가지마 유조 판사는 허헌의 변론을 받아들여 공소각하판결을 내리고 33인 전원을 석방시켰다. 유조 판사의 판결이 돋보이는 이유는 식민지배 하에 있는 변호사의 변론이더라도 법리적으로 타당하게 보아 양심 있는 판결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재판을 살펴보자. 총독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 재판정도 감동적이다. 뤼순 법원의 형사 재판정에서 안중근을 변호한 일본 변호인 미즈노 기치타로는 조선인 안중근이 청나라 땅에서 범행을 했으므로 일본법원에 의한 재판권이 미치지 않는다고 변론했다. 또 안중근의 암살은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구국의 결단이므로 정당행위라는 변론을 이어갔다. 두 재판은 일본 법조인의 한국인에 대한 공정한 판결과 인간존중에 근거한 변론을 보여주고 있다. 1997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처음 일본제철을 상대로 오사카지방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으로 시작됐다. 일본 법원의 원고 패소판결은 한국 법원으로 건너와 승소판결로 고쳐졌다.

2020년, 도쿄올림픽이 개최된다. 한국 법원 판결이 다시 도쿄중앙지법으로 건너가 1997년 오사카지방법원이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새로운 판결문이 작성되길 기대해본다. 도쿄중앙지법 민사법정 변론석에서 미즈노 변호사와 닮은 변호사의 변론과 유조 판사의 판결 정신을 승계한 판결이 선고되길 바란다. 인류의 행복을 축원하는 올림픽을 개최하기 전, 도쿄 법원에서 인권을 치유하는 판결을 통해 전 세계 이목을 끄는 일본이 되길 바란다.

/박상흠 변호사·부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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