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예술이 있다. 우리가 진실 때문에 몰락하지 않도록.” 생각하는 것을 삶의 중요한 문제로 인식한 니체의 말이다. 그가 언급한 예술의 기능은 사유(思惟)에 있지만, 미술의 사유적 기능은 ‘돈맛’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비영리기관의 연구자’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영리판단을 요구받는다. 혹자들은 미술시장에 나온 쇼핑 품목(?) 가운데 어떤 작품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상속받은 작품의 실 거래가가 얼마인지를, 비싼 작품이 유통되는 방식 등에 대해 질문한다. 비싼 그림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기기 때문에, 부정성과 긍정성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다. 무엇이 우리의 주관적 눈맛을 자본 가치로 이끄는가? 획일화된 눈맛은 어떻게 안목(眼目)으로, 심미안(審美眼)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얼마 전 132억 원으로 국내 최고가를 경신한 김환기의 뉴욕시대 작품 ‘Universe 5-IV-71 #200(1971)’은 작품에 담긴 여러 의미에도 불구하고, 작품가격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현상을 낳았다. 미술품 과열 경쟁이라는 비극론부터, 한국미술시장도 세계와 견주게 되었다는 희극론까지 김환기 화백이 살아 있다면 쓴 웃음을 지어야 할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제프 쿤스의 은색 고철덩어리 ‘토끼(1986)’가 1000억 원대에 팔리고, 일상용품을 마구 찍어낸 워홀의 작품이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시대,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1890년경)’ 피카소의 ‘꿈(1932)’ 등이 수천억 원대를 호가하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신화가 되고 작품은 미술사에 굳건히 남게 된 것이다.

미술시장은 미술품의 가격이 매겨지고 거래되는 곳이다. 오늘날 현대미술의 장에서 미술시장의 비중은 엄청나게 커져 있다. 일반적으로 돈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미술을 미술시장이 해치는 인상을 풍기지만, 오늘날 미술품은 단순한 수요·공급의 기능을 넘어 독자적으로 가치를 생성·소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미술시장에서 사용하는 호황(boom), 폭락(crash), 가격상승(appreciation), 시세(quotation) 등의 용어들이 금융시장과 동의어인 이유다. 비대해진 미술의 경매경쟁은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와 연관된다. 어떤 상품의 가격이 오르는 데도 과시욕·허영심 때문에 수요가 줄지 않는 현상으로,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이 1899년 출간한 ‘유한계급론’에서 처음 사용했다.

미술의 자본가치가 반드시 부작용만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무수히 많은 박물관의 유물들은 대부분 콜렉터의 사회적 환원에 의해 만나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손인 안나 메디치(Anna Maria Luisa de’Medici)의 콜렉션인 우피치미술관으로, 안나는 콜렉션을 피렌체에서 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토스카나 정부에 기증했다. 돈맛으로 쌓인 콜렉터의 개인소장품들은 기부에 의해 사회적·공적 자산이 된다. 민족유산을 지킨 위창 오세창, 수정 박병래, 간송 전형필도 콜렉터였다. 올바른 눈맛은 자신의 가치판단을 사회적 가치로 전환했을 때 이뤄지기 때문이다.

/안현정 예술철학박사

성균관대박물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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