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두 번째 인생이 주어진다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봤을 것이다. 파리 외곽 중소기업 회계원으로 일하는 중년 남성 마르크 바르티에는 자살을 결심했다. 비루하고 의미 없는 생을 스스로 마감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은 그냥 ‘빈껍데기처럼 텅 비어 있다’고 느꼈다.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자식도 그 결심을 막을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다른 사람의 인생과 바꿔 새롭고 의미 있는 ‘제2의 삶’을 살아보지 않겠느냐는 뜻밖의 제안이 들어온다. 이름과 가족, 그리고 직업과 재산 등 모든 것이 통째로 바뀌는 것이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누군가가 되고, 그 누군가가 내가 되는 일이다. 반신반의 했지만 대통령의 국가 복지개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법적 제도적 보장을 한다는 내용까지 포함한다는 사실에 제안을 수락한다.

그렇게 마르크 바르티에는 39살의 사업가 프랑수아 드몽탈이 된다. 드몽탈은 아내와 15세 예쁜 딸이 있고, 가업으로 물려받은 대기업의 오너다. 놀고만 있어도 자산이 늘어나는 한마디로 ‘금수저 인생’이다. 인생을 바꾼 바르티에는 자신의 ‘제2의 인생’을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부러울 것이 없을 것만 같은 드몽탈은 왜 자살을 결심했던 것이고 인생 교환에 응했을까? 바르티에의 삶으로 바뀐 드몽탈은 과연 만족하며 살아갔을까? 왜 프랑스 정부는 상상하기 힘든 인생교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을까? 이런 질문과 답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는 전개되어 나간다.

저자인 베르나르 무라드는 레바논 출신으로 금융전문가이자 언론사와 선거캠프 경험을 가진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 다양한 경험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소설가를 꿈꾸는 무기력한 회계사, 미디어를 활용한 정치, 자본의 힘만으로 돌아가는 기업, 대중을 현혹시키는 TV 리얼리티쇼, 개인의 행복에 개입하는 정부 등 작가의 시선은 자신의 삶의 이력을 이야기 하듯 날카롭게 해부하고 차갑게 풍자한다. 이는 스스로 정체성을 잃고 불안과 고독 속에서 병들어가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삶은 늘 기회비용의 연속이다. 무엇인가를 선택하면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때론 지금의 힘들고 고된 현실을 벗어나, 어딘가 자신의 꿈을 새롭게 펼칠 수 있는 제2의 인생이 있지 않을까 동경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현재 삶을 충실히 살지 못할 때, 제 2의 인생이 그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완전히 비우고 백지’가 된 내가 아닌 충실히 채우고 의미를 새겨나가는 내가 될 때, 삶은 더 새로워지고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행복은 자신에게 주어진 지금이라는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고자 노력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됐다. 오늘도 고단하고 힘든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든 분들의 분투를 응원하며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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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 인간의 정신을 말살하는 것은 사회적 모랄이라는 메시지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무라카미 하루키, 민음사)』 - 자신의 삶이 흔하고 평범한 무채색이 아닌, 멋지고 아름다운 컬러의 삶이었음을 친구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일깨우는 소설

 

 

/장훈 인천광역시 홍보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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