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는 지난 7일 대한변협회관 18층 대회의실에 1만, 2만, 3만 번째 변호사를 초청해 간담회를 개최하고, 변협에 바라는 점에 대한 부분을 대한변협신문에 게재하고자 한다. 간담회에서는 근황과 후배 변호사들에 대한 조언 등이 오갔다.

 

일시: 2020. 1. 7.(화) 19:00
장소: 대한변협회관 18층 대회의실
참석자: (변협)이찬희 협회장, 왕미양 사무총장, 양소영 공보이사
(초청)서창희 변호사, 박선영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이정민 변호사

*내용에서는 직급 및 직책을 생략하였습니다.

 

양소영 : 지금부터 대한변협 신문편집위원회 주관 3만 번째 변호사 등록 기념 간담회를 개최하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인 간담회 시작에 앞서 오늘 간담회에 참석자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간담회에는 바쁘신 일정 중에도 대한변호사협회 이찬희 협회장님 왕미양 사무총장님께서 자리해주셨습니다.

첫 번째 다음으로 1만 번째 등록 변호사이신 서창희 변호사님을 소개를 하겠습니다.

서창희 변호사님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대전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대구지방검찰청 상주지청 지청장,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2부 부장검사,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현재는 법무법인(유) 광장에서 근무 중이십니다.

다음은 2만 번째 등록변호사인 박선영 변호사님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선영 변호사님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제3회 변호사시험을 합격하셨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사무차장, 서울회 프로보노지원센터 상근변호사를 역임했고, 현재 법무법인 해마루에서 근무 중이십니다.

오늘의 주인공이신 3만 번째 이정민 변호사님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정민 변호사님은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와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제8회 변호사시험을 합격하셨습니다. 작년 12월 13일, 3만 번째 변호사로 등록하여, 현재 신세계푸드에서 사내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양소영 : 이찬희 협회장님께서 환영사를 겸해서 인사 말씀을 해주시겠습니다.

이찬희 : 행운의 여신이 전부 방끗 웃으신 세 분이십니다. 정말 변호사 3만 번째 등록하는데 단 세 분만이 영광을 차지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한 그만큼 긴 변호사 역사에 한 페이지씩 장식하시는 분들이니까 저희 가장 모범적인 변호사님들로서 후배변호사들에게 좋은 길을 좀 보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변호사의 꿈을 꾸거나 새로 변호사로 들어올 분들을 위해서 좋은 말씀들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양소영 : 총장님께서도 한 말씀 주시면 좋겠습니다.

왕미양 : 저는 대한변협 사무총장을 현재 맡고 있고 등록번호는 대선배 5747입니다. 세 분은 1만, 2만, 3만 번 등록번호 등록하시자마자 특별한 스토리를 가지게 되셔서 정말 행운의 여신이 따르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분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 또 저도 사무총장으로써 함께 해서 영광스럽게 생각하고요. 서창희, 박선영 변호사님께서는 그동안 다양한 활동을 하시면서 하나의 큰 성을 쌓았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정민 변호사님께서도 더 큰 일 많이 하시고 변호사 업계에서 자랑스러운 후배 변호사로 커주기를 바랍니다.

양소영 : 본격적인 간담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근황을 좀 여쭤보고 싶습니다.

서창희 : 저는 연수원을 마치고 계속 검찰에 있었습니다. 17기였으니까요. 군법무관도 했고, 검사생활 15년을 마치고 개업을 했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개업은 5월에 하게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전부 연수원 출신이던 시절이니까 개업하는 분들이 2월, 3월에 거의 등록을 하였습니다. 5월 2일부터 광장에 출근을 했는데 그때만 해도 본인이 직접 서류를 들고 와서 접수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출근한지 며칠 있다가 서류를 들고 접수를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 다시 돌아오니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라는 메일이 왔습니다.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당시 변협회장이셨던 천기흥 변호사님과 변협 총장이셨던 오욱환 변호사님께서 사석에서 “천 단위에서 만 단위로 넘어가는데 기념품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이야기를 하였다고 하신 기억이 납니다. 제가 돼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금배지를 주기로 결정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법정에 많이 안 나가지만, 초반에는 중요한 재판 등에는 금배지를 달고 다녔습니다. 이후 한 15년 정도 광장에서 계속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저희 형사팀에서 팀장 역할을 하면서 주로 사건도 하지만 행정적인 부분들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재밌게 잘 지내고 있고요. 3만 번째 이정민 변호사님 축하드립니다.

박선영 : 제가 2만 번째 배지를 받을 때가 세월호 사건 하면서 광화문에서 노숙하던 때였습니다. 그 때 변협에서 전화로 수요일에 변협에 올 수 있는지 물어보셔서 “왜 그러냐”라고 했더니, 2만 번째 등록자이신데 오실 수 있는지 없는지 일정을 알려달라고 해서 일단은 갈 수 있다고 하고 그때 와서 받고 갔습니다.

공익 활동하면서 2만 번째 변호사가 됐을 때는 친구들이랑 여성이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면서 활동할 수 있는 로펌을 만들자고 해서 몇 명이 마음을 맞춰서 하려고 하다가 세월호 사건을 하다 보니 사건을 떠날 수가 없고, 공익을 하는 짐을 친구들한테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산이 되고 공익활동을 계속 하려면 취업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안산에 법률사무소 이만이라는 이름으로 개업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실을 한 6, 7개월 정도 하다가 그 다음에는 이제, 같이 활동했던 박주민 의원님, 지금 의원님이 출마하시게 되면서 그 선거도 도와드리고 선거 도와드리고 난 다음에는 송무를 배우려고 다른 로펌에 잠시 있었습니다.

공익활동을 하다가 로펌을 가다 보니까 로펌에 가 있으면 아무래도 활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너무 갑갑하고 공익활동을 하고 싶어서 서울지방변호사회 프로보노 지원센터에 지원을 했습니다. 거기서 여러 가지 매뉴얼도 만들고, 각종 이제 공익변호사들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만들면서 보람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변호사회 안에 있다 보면 제가 다른 공익변호사를 지원하는 역할이지 제가 필드에서 활동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지금 법무법인 해마루를 선택했습니다. 공익활동이 송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며 공익활동에 제한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해마루에서 지금 현재 미츠비시 강제징용 사건이나 4․3사건 등을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실제로 그 사건을 하지는 않았지만 공익소송을 다 지원을 해주실 분들이어서 이직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해마루라는 테두리 안에서 계속해서 이제 안산지역에 비정규노동자 조직화 활동 등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족하고 있고 그때 처음 뵈었을 때 길에서 노숙하던 때 보다는 지금 좀 더 안정적으로 공익활동을 할 수 있고 또 공익하는 변호사님들이랑 많은 연대를 이룰 수 있어서 저는 지금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정민 : 저는 작년 8회 변호사시험 합격하고 대한변호사협회에서 6개월 동안 연수과정을 마쳤습니다. 계속 사내변호사 쪽을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수과정 중에 여기 저기 취업지원을 했습니다. 그러다 11월 말 쯤에 합격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때까지 계속 등록을 미루고 있다가, 취직된 기념에 “빨리 등록을 해야겠다” 싶어서 했는데 그게 마침 3만 번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정말 너무 놀랐고 변협에서 먼저 제가 3만 번째라고 이렇게 소식을 들려주셨을 때 피싱인지 의심도 해봤습니다. 3만 번째가 될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 했거든요. 그래서 3만 번째가 돼서 정말 많이 기쁩니다. 3만 번째 변호사 등록 보도자료가 나갔을 때가 제가 입사한 첫날이었어요. 그래서 입사하자마자 굉장히 주목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찬희 : 박선영 변호사는 벌써 대표 변호사를 해보셨군요.

박선영 : 직원도 없이 저 혼자 개업을 한 거니까요. 그때는 또 더 지금보다 어렸을 때니까 복사를 하러 가면 직원인줄 알고 “왜 그것도 모르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제가 변호사인데 차마 직원이 없다는 말은 못하겠어서 “직원이 아파서 제가 왔어요”라면서 복사를 하고 있었죠.

이찬희 : 1만 번째 등록하신 서창희 변호사님께서는 합격 기준으로 따지면 30년 훨씬 더 넘으신 정말 대선배시잖아요. 그간 많은 경험과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선배 법조인으로서 후배들에게, 옆에 막 역사적인 순간에 계신 두 분께 선배 법조인으로서 조언을 해주실 수 있다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창희 : 제 안사람에게 “뭐, 혹시 질문 같은 거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러니까 “말 잘못하면 꼰대 소리 들으니까 조심하라”고 했는데. 제가 변호사할 때만 해는 로스쿨 이야기가 막 나올 때로, 로스쿨 설립 법안은 통과되기 전이었습니다. 저는 미국 하버드 로스쿨에서 연수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때 법조 기자분들이 와서 로스쿨들을 돌아보면서 질문들을 했습니다. 당시 교수님이 알프레드 교수라고 학장도 하시고 부인이 동양계라 동양을 굉장히 잘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때 “급하게 할 거 있느냐, 다른 데 보고 천천히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일본이 로스쿨 하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후 로스쿨이 도입되었는데, 로스쿨 제도의 당부에 대하여는 제가 말씀드릴 주제는 아닌 것 같고,

요새 변호사 시장이 워낙 어렵고, 새로 나오시는 분들도 점점 취업하는 게 어려워졌습니다. 대우도 많이 열악해지고. 저도 사법연수원 교수를 하면서 제자들 취직을 시켜야 하니 친분 있는 데 전화해가지고 “변호사 구하지 않느냐”는 부탁도 하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변호사를 15년 정도 해보고 보니까 참 좋은 직업입니다.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전문가로서 다 보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변호사는 사회 어느 분야에 대해서도 자기주장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을 대신해서 논리적으로, 법적으로 그 입장을 설명을 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디서든 필요한 직업입니다. 또 어떤 일을 하더라도 받은 훈련과 자격이 큰 도움이 되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시간을 갖고 희망하는 분야라든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전문지식도 많이 키워야 합니다. 그렇게 몇 년 지나고 나면 더 길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말을 하는 걸 잘못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 여유를 가지고 생각을 하고 좀 다양한 분야에서 하고 싶은 것들. 또 전문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분야를 조금 더 관심을 더 많이 가져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찬희 :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 변화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까 2만 번째 등록한 박선영 변호사는 노숙에서 시작해서 지금 안정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니 변화를 많이 겪었을 듯합니다. 2만 번째 기념식을 하고 5년 정도가 지났는데 등록을 막 했을 때랑 지금, 본인에게 가장 좀 달라진 변화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박선영 : 처음엔 아는 사람도 없이 갓 시작한 변호사였는데. 지금은 주변에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공익이 중요하고, 공익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많은 동료가 생겼습니다. 법무법인 해마루에서 저를 돌봐주시고 제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받쳐주시는 선배님들도 있고, 또 동료가 많아졌습니다. 그때는 잘 모르는 게 있어도 어디에 전화를 해야 될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친구나 선배 변호사한테 전화해서 “너 이거 서식 있니? 너 그거 소송해봤니?”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또 협회에 건의를 드리거나 하고 싶은 활동이 있을 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게 가장 달라진 점입니다.

이찬희 : 인맥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가장 최근 3만 번으로 등록하신 이정민 변호사님은 지금 아직 변호사로서 시작한지 한 달이 안 지났기 때문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로서 첫발을 내딛기 전까지 연수를 받으면서 어려웠던 점, 앞으로 변호사가 되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을 듯합니다. 또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사내 변호사로서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과 고충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이정민 : 신입 변호사로서 자리 잡는 데 굉장히 많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일단 대한변협 취업 공고를 매일 확인하고, 회사에 지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신입 변호사를 뽑는 사내 변호사 자리는 많이 없었습니다. 거의 다 4, 5년 이상 경력을 원해서 저는 “어디 가서 제가 4, 5년에 경력을 쌓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지금 일하면서도 아직은 제가 미숙해서 각종 계약서들을 검토를 할 때 변수가 많더라고요. 이런 돌발변수들을 어떻게 제가 검토를 하고 문제를 예방할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이 굉장히 많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계속 경험과 지식을 많이 쌓는 게 제 목표입니다.

이찬희 : 각각의 시대에 맞는 경험과 고민들을 이렇게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후배들이 전부 바라보는 대표적인 분들이 되실 거니 후배들에게 더 많은 응원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양소영 : 변협에 본인에 원하는 사항을 전달하는 기회가 사실 별로 없습니다. 지금 간담회에 협회장님과 사무총장님도 계시니 변협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면 말씀 부탁 드립니다.

이찬희 : 저 사실 되게 만나기 쉬운 사람입니다. 다들 휴대폰 번호도 가지고 계신데, 직접 또는 연락을 해서 조언을 해주시는 걸 어려워하시는 듯 합니다. 저도 소통을 하려고 많이 애쓰고 있습니다. 본인이 아니라 다른 분들이 이런 점이 고민이 아닐까 싶은 부분도 말씀해주시면, 협회 차원에서 최선을 다해서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창희 : 변협은 제가 검찰에 있을 때라든가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변호사들이 다 고시나 사시 출신이어서 동질성이 굉장히 강하였던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도 결정적일 때 한 번씩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으로 반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인원도 많아지면서 전체 회원들의 스팩트럼이 넓어진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협회의 목소리, 공통된 입장을 발표하시기가 굉장히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참 고민을 많이 하는데, 협회라면 공통된 회원들의 이익을 반영을 하고 목소리를 대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도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변협을 나눈다거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변호사들끼리 모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변협은 변호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 단체라고 볼 수 있는데, 워낙 이해관계가 다양해진 상황이라서 좀 어렵지 않은가 싶습니다.

박선영 : 저는 서울지방변호사회 프로보노 지원센터에서 공익변호사를 지원하며 고충을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변호사 수가 많아지면서 밥벌이 수단으로 변호사가 직업으로서 가치가 조금 떨어졌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변호사라는 자격의 가치가 내려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법률용어로 번역해주는 게 저희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의뢰인에게 사실관계를 가지고 저희가 법원에서 설명을 하는 거니까요.

요즘에는 검색을 통해서 법률용어를 알 수 있는 젊은 세대나 관련 지식이 있는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은 사실 법률용어 자체나 일반적인 말로밖에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은 사회적으로 도움을 받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움이 필요해도 어디를 가야할지 모르고, 소송 구조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폭도 굉장히 좁습니다. 그래서 공익변호사들이 그런 부분을 커버해야 하기도 합니다.

공익변호사, 특히 청년 변호사들이 지닌 가장 큰 어려움은 공익변호사를 하면서 먹고 살 수가 없다는 부분입니다. 서울에서는 지금 자리 잡으신 분들이 꽤 있기는 있지만, 지역을 거점으로 했을 때 특히 지방에 자리를 잡은 공익변호사 수는 굉장히 적습니다. 자리를 잡으려고 고군분투하고 계신 분들에 대한 지원 사업이 변협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뤄질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스쿨생, 청년 변호사 중에는 공익변호사로 활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분들을 위한 지원 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찬희 : 이정민 변호사께서도 새내기 변호사로서 협회에 바라는 점 있으신가요.

이정민 : 저는 요새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관련 특강들을 들어보면 변호사가 대체되기 쉬운 존재로 많이 비춰집니다. 그래서 변호사들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변협 차원에서 있었으면 합니다.

이찬희 : 세 분의 좋은 말씀 잘 새겨서 추진하겠습니다. 그 중 저희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부분도 일부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서창희 변호사님께서 말씀하신 동질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대한변협신문에 게재한 신년사에도 썼지만, 부치지 못한 연애편지보다 발표하지 못한 성명서가 많습니다. 이념적 성향이 완전히 다른 변호사들이 모두 변협이라는 울타리 안에 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쪽의 이야기를 발표하는 순간 상대방은 반발하고, 협회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어서 조심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북한 어민을 북송하는 문제는 정치와도 연결될 수 있지만, 인권 문제이기 때문에 강하게 성명서를 냈습니다.

다수 국민, 다수 변호사가 공수처 제도에 찬성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을 견제하면서 또 개혁을 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다시금 새로운 권력기관을 만드는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견을 내면 칭찬보다는 욕을 더 많이 듣는 자리가 협회장입니다.

일본에는 동경지방변호사회가 3개로 나눠져 있습니다. 일본 동경변호사회가 진보적으로 움직이니까 그에 대한 반발로 보수적인 변호사들이 동경1변호사회를 만들고 동경변호사회와 계속 이념적인 갈등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념적인 갈등이 아니라 변호사의 현실을 더 직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방회를 1, 2, 3 지방회로 나누는 건 가능하지만 협회를 나누면 법원, 검찰 뿐만 아니라 국회나 다른 기관들과 관계를 설정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역대 협회장님들을 보면, 진보 성향인 분과 보수 성향인 분이 모두 계십니다. 결국 협회는 회원들이 선거로 의사를 표현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다수 의견에 따라 운영을 하되 가급적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좀 더 중심을 잘 잡기 위해서 항상 회원들에게 고견을 여쭤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선영 변호사님 의견에도 답변 드립니다.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더 많은 분이 공익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제가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직을 역임할 때 공익 프로보노 지원센터를 운영을 하면서 많은 지원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현재 협회 차원에서도 전국을 커버할 수 있는 프로보노 지원센터를 올해 내에 설립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지방에 계신 분들께도 특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정민 변호사님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도 답변 드립니다. 4차산업 혁명시대를 맞아 변협은 지난해 4차산업융합법학회, 블록체인법학회, 인공지능법학회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변호사님들이 관련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직접 진출할 수 있는 여건들을 계속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 관련 정보들에 대해 협회가 적극 홍보를 하겠습니다.

AI로 대체 가능한 직업으로 변호사를 많이 꼽는데 판례나 법률을 검색하는 송무 영역에서는 일부 대체 되겠지만, 조정이나 중재 등 인간의 감성을 바탕으로 하는 또 다른 영역은 완전 대체가 어렵습니다. 기계적인 일을 하는 직업보다는 훨씬 더 생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의견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희 협회 내 저나 임원분들께 말씀해주시면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왕미양 : 저희도 우리 1만 번, 2만 번, 3만 번째 변호사님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열심히 서포트 할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많이 발전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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