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요, 어차피 이런 거 하나도 안 믿어요.” 소년은 증오로 가득한 눈빛으로 소리쳤다. 무엇이 고작 중학교 1학년짜리 아이를 이처럼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차게 만든 것일까?

평생토록 소년의 아비가 한 일은 술을 마시고 아이와 아이의 어미를 때리는 것이었다. 소년의 어미가 일을 나가면 아비는 더욱 무자비하게 소년을 때렸다. 소년은 그와 단둘이 남겨지는 시간이 공포스러웠다.

“나는요, 어느 집이나 다 이런 줄 알았어요.” 그러나 학교에 가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소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었다. 자존심이 강한 소년은 학교 선생님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 그날 밤 아비는 또 소년을 미친 듯이 때렸고, 듣다 못한 이웃이 신고를 했다.

소년은 온갖 저주의 말을 자신의 아비에게 쏟아 내었다. 소년은 아비를 ‘그 사람’이라고 칭했으며, 그가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기를 바랐다. 목이 멘 수사관 때문에 조사는 중간중간 중단되었다.

소년은 4년 전에도 경찰서에 갔다고 했다. 그때 소년은 겨우 만 8세였다. 어미는 소년에게 한 번만 아빠를 용서해 주자고 했다. 아비는 달라지지 않았다. 소년이 ‘이런 걸 믿지 않는 이유’였다. 이번에도 소년의 어미는 아비를 용서해 주자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법은 강화됐고, 소년도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소년은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

구속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가정보호사건으로 진행됐다. 의사 소견상 그에게 남은 기간은 3~4개월이며, 어떠한 처분을 해도 집행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평생 마신 술이 그 원인이었다. 40대의 그에게 남은 기간은 한 계절이었다. 하마터면 그를 조금은 안쓰러워할 뻔했다. 판사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그는,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라고 답했다. 아이에 대한 사과는커녕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그에게 딱 어울리는 마무리였다.

소년은 덩치도 머리도 커졌다. 소년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소년은 그 어미를 애증했다. 함께 있기를 원하면서도 분노했다. 이제는 소년이 엄마를 때린다. 폭력의 대물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수연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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