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왕인가? 가격을 지불하고도 그 만큼의 권리를 갖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의문이다. 정치적 이슈 때문에 한동안 잊혔던 소비자보호 문제가 DLF(파생결합펀드) 사태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간 가습기살균제사건부터 BMW 차량화재사건 등 다양한 이슈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비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노력은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의 호소에 묻혀 이내 가려지곤 했다.

소비자의 권리 개념은 20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는 더 늦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성장이 절실해서 사업하기 좋은 환경의 조성이 우선시 되었기에 소비자의 권리는 잠시 내려놓고 공급자위주의 시장이 형성되었다.

소비자보호는 규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금융당국이 DLF와 같은 고난도투자상품의 판매금지를 결정하자 과도한 것이 아니냐는 논쟁이 벌어졌다. 불완전판매가 아닌 경우라면 상관없지 않는가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상대방의 동의가 있다면 모두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은 소비자가 합리적 의사결정을 한다는 가설에서 나온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카고대의 세일러 교수는 “현실의 인간은 당신들이 가정하는 만큼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결국 공법적 규제와 사법적 권리구제간 접점을 찾는 과제가 남는다. 사전적 성격의 공법적 규제가 후퇴하면 사후적 규제 및 권리구제가 강화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징벌적 과징금제도와 손해배상소송에서 소비자 입증책임의 완화이다. 정부가 징벌적 과징금제도를 채택한다고 하지만 일반재정으로 들어가서 연례적인 연말 보도블럭 교체에 사용된다면 피해를 입은 소비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소비자는 일상의 삶에 쫓기면서 어렵게 시간을 쪼개 소송을 해도 손에 쥐는 것은 소액에 불과하다. 소비자보호기금을 만들자는 논의가 나오는 이유다. 점점 더 복잡해져가는 상품과 서비스 구조에서 소비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지 않으면 지리한 소송의 끝 역시 미약할 것이 명확하다.

최근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가 금융소비자보호법을 통과시켰다. 2011년 처음 법안이 발의된지 8년만이다. 내용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집단소송제 등이 빠져 획기적이지는 않지만 소비자 청약철회권 등 일부 진전된 사항이 포함되었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그 한발자국에 나름의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늘 그렇듯이 하나의 모멘텀이 있을 때 비로소 입법이 움직인다. 안타까운 것은 그 모멘텀이 거의 대부분 사고라는 것이다. 인명손실 또는 큰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한 경우다.

가격은 품질과 서비스에 대해 비교적 정직하다. 따라서 그 가격을 지불한 이상 사고가 없더라도 소비자의 권리는 꾸준히 지켜져야 한다. 손님이 왕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봉’은 되지 말아야 한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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