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살면 살수록 삶이 무뎌짐을 느끼게 된다. 별 것 아닌 것에 신경줄이 예민했었다는 생각과 함께 모든 것이 시시해진다. 그래서 노인네의 허리춤이 헐거워지는지도 모르겠다. 손끝 물기가 점차 사라지면서, 젊어 더럽다고 느꼈던 노교수님의 손끝 침 묻힘 책장 넘기기가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도 요즘 화두는 ‘진짜 찾기’이다. 진짜와 가짜가 혼재되어 있는 세상, 아니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세상에서 진정 진짜가 무엇인지 찾아야 하지 않느냐는 자기 질문에 빠져 있다. 그러면서도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조차도 혼란스럽다.

요즘 필자는 진정한 법률가라면 진정한 종교인이 먼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신을 믿지 않는 자가 어떻게 ‘세상 신의 역할을 담당하는 법률가’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에 잠기게 된다. 법률가는 직업의 속성상 권모술수에 능통하다. 물론 법조삼륜인 변호사, 검사, 판사의 직역에 따라 조금 다른 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공통적으로 법률가는 ‘속이고 속는 일에 익숙한 자’일 수밖에 없다.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미명 아래 오히려 수많은 거짓을 창출하거나 진실을 은폐하는 일에 헌신(?)하는 이들이 현대의 법조인들이다. 그러기에 진실을 밝히는 성(聖)스러운 직역의 법률가들이 더 타락하고 더 추해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대학에 있을 때 제자들에게 “내가, 교회 목사님은 안 믿어도 판사님은 믿는다”라는 말을 종종 했었다. 사법부를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신뢰도 눈감고 용서를 해줄 경우는 있어도, 눈뜨고 억울한 자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소극적 신뢰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신뢰가 양승태 사법부체제에서 자행된 사법농단 사태로 깨어졌을 때 어쩔 수 없이 제자들에게 사과했었다. “미안합니다. 내가 잘못 판단했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 권력이 그 어느 정권 때보다 막강해졌다. 임기가 보장된 윤석열 총장 체제에서 검찰의 칼춤이 점차 도를 넘고 있다는 우려가 생길 정도이다. 내부개혁을 통한 검찰의 환골탈태를 희망했던 정권의 의도와 반대로 오히려 자신들의 권한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듯 조국 전 장관사태를 빌미로 현 정권을 공격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역상황은 패스트트랙을 통해서라도 공수처를 설치해야겠다는 필요성을 현 정부에게 인식시키고 있다.

요즘 ‘사도법관 김홍섭 평전’을 다시 접하며, 평생 경천애인사상으로 모범을 보이시며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았던 선배 법조인을 새삼 존경하게 된다. 50에 영면하신 분의 귀감적 삶을 통해 자본물신주의에 빠진 70이 다 되어가는 후배가 ‘진짜’를 찾아야겠다고 헤매고 있다. 진짜를 찾긴 찾아야 할 텐데.

 

 

 

/오시영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동서남북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