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헌재 결정 취지 반영하지 않은 세무사법 개정안 입법되면 위헌 소송 진행
조세소위에서 ‘위헌적’ 개정안 잠정합의 … “세무사 이익만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

같은 세무사 자격을 가진 전문가지만, 변호사에게만 일부 업무를 하지 못 하도록 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위기에 처했다. 법조계는 이에 크게 반발하고 이런 위헌적 개정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는 지난달 28일 “세무 업무에서 가장 핵심인 기장과 성실신고 확인을 제외하는 김정우 의원안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위헌적 법안”이라면서 “이런 개정안을 입법하는 건 또 다른 분쟁을 예고하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일갈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지난달 25일 세무사 자격을 지닌 변호사들에게 핵심 업무인 ‘기장과 성실신고 확인’ 업무를 허용하지 않는 김정우 의원안에 잠정합의했다. 직역단체 등 의견을 수렴해 실무교육을 이수하면 모든 업무를 가능토록 한 정부안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변협은 “기재부 출신인 김정우 의원안은 국민이 아닌 세무사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개정안”이라면서 “직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에 대해 장기간 정부부처와 직역단체가 의견을 수렴한 과정을 무위로 돌릴 수 있는 불합리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세무사 측은 회계 장부 작성 및 성실신고 확인 업무를 변호사에게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원경희 한국세무사회 회장은 조세소위에서 “장부 작성과 성실신고확인 업무 등은 법률사무가 아닌 순수 회계 업무”라면서 “세무사와 회계사의 고유 업무”라고 주장했다.

변협은 ‘기장과 성실신고 확인’ 업무에 가장 적합한 직종이 변호사라는 입장이다. 해당 업무는 세법 해석과 적용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회계 전문성을 바탕으로 관련 업무를 ‘당연하게’ 해온 변호사는 많다. 심지어 그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조세소송팀을 두고 있는 로펌도 상당수이며, 지난달 28일 기준 조세 관련 전문분야 등록 변호사는 84명이다. 또 올해 법전원 입학자 중 495명(23.17%)은 상경계열이다.

김정우 의원안에서 제한한 장부 작성 등 업무를 하는 변호사도 다수 있다. 지난해 변협 요청에 따라 청년변호사에게 세무기장대리 비용을 할인해주겠다고 나선 변호사는 43명에 달했다.

대한변협 세무변호사회에 가입한 변호사는 1100여 명에 이른다. 세무변호사회는 세무 교육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공익 조세심판 및 소송 전담 부서를 설치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개정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헌적 요소가 남아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상 변호사에 대한 세무대리업무 수행을 원천봉쇄함으로써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또 다시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미양 변협 사무총장은 “장부 작성과 성실신고확인 업무를 보장토록 하라는 것이 헌재 결정 취지”라면서 “유사직역 이권에 매몰돼 헌재 결정에 반하는 입법을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박병철 대한변협 세무변호사회 사무총장도 “헌법불합치 결정은 변호사에게 장부 작성과 성실신고 확인 업무가 허용되지 않고 있는 점을 시정하라는 결정”이라며 “헌재 결정에 반하는 입법이 되면 소송이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세무 관련 업무를 적정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헌법과 민법, 상법 등 관련 법령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법률 해석·적용능력이 필수적”이라면서 “세무사나 공인회계사보다 법률사무 전반을 취급하는 법률전문직인 변호사에게 오히려 그 전문성과 능력이 인정된다”고 판시(2018. 4. 26. 결정 헌재2015헌가19)한 바 있다.

이전부터 세무사 자격을 지닌 변호사를 세무업무에서 배제하려는 시도는 계속 있어왔다. 국세청은 세무대리업무 등록신청이나 세무조정반 지정을 거부하는 등 조치로 세무사 자격을 지닌 변호사들에게 실질적으로 기장대리 업무 등을 제한해왔다. 변협은 최근 관련 소송에서 모두 승소하며 해당 조치가 모두 위법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국민이 세무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적합한 전문직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세 관련 사건이 쟁송까지 이르게 하지 않도록 할 법적인 지식이 충분한 ‘변호사’라는 선택지를 제외함으로써 피해를 보는 건 결국 국민이라는 주장이다.

기재위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2소위원회에서 법안 체계·자구 심사를 거치게 된다.

이찬희 협회장은 “현재의 세무 업무 제한은 운전면허는 있는데 운전을 하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이라면서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반영하지 않은 세무사법이 통과된다면 위헌소송 제기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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