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사내변호사를 그만두고 개업하였다. 재판이 있어 오랜만에 다시 법정에 갔는데,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적잖이 당황했다.

전자 사건으로 진행되는 사건이기에 크기가 작은 노트북에 파일을 담아 노트북 하나만 달랑 들고 온 필자와 달리, 재판의 순서를 기다리는 변호사 대부분이 종이로 된 사건 기록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법정에 노트북 가지고 들어오면 안 되나? 혹시 판사님 앞에서 노트북만 펼쳐 놓고 변론하는 게 법정 예의에 어긋나나? 온갖 추측을 하며 눈치를 보다가, 재판장님의 사건번호 호명 소리를 듣고 주춤주춤 노트북을 들고 원고 대리인 석으로 가서 얼떨결에 변론을 마쳤다.

당연한 일이지만, 다행히 노트북 변론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법정을 나오면서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로부터 몇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법정에서 노트북만을 보며 재판하는 변호사를 찾기는 쉽지 않다. 변호사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종이 기록을 사용하겠지만, 필자는 종이보다 컴퓨터로 파일을 보고 서류를 작성하는 것에 익숙하고, 무엇보다 편하다.

일부 형사 사건을 제외한 사무실에 있는 모든 기록은 전자 파일로 저장하여 보관하고 있고, 거의 모든 의뢰인과 이메일이나 카톡 등으로 사건 자료를 주고받기 때문에, 필자가 운영 중인 사무실에서 종이 기록은 잘 찾아볼 수 없다. 형사 사건 역시 기록이 많지 않은 사건은, 파일을 모두 스캔하여 컴퓨터에 저장해두고 사무실에 굳이 가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마다 열람하여 검토하곤 한다.

이렇게 해 두니,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곳에서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사무실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외부 일정으로 이동 중 차안에서, 심지어 카페에서 그윽한 커피향을 맡으면서 노트북만 켜면, 그 곳이 내가 일하는 장소가 된다.

이번 여름휴가 때, 꽤 긴 일정으로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며칠 뒤 바로 증인 신문을 해야 하는 민사 사건의 증인신문사항을 완성하지 못하고 비행기를 타야만 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작업하고 현지에 도착해서 의뢰인과 이메일로 수정사항을 주고받으며 최종안을 완성한 후 전자 소송 홈페이지를 통해 바로 제출했다. 휴가 기간 동안 몇 차례 더 업무가 발생했지만, 노트북과 온라인 드라이브에 사건 자료를 모두 담아두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

컴퓨터, 책상과 의자, 몇권의 책만 있으면 업무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사무실 시설 투자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공유 오피스에 개업 둥지를 틀었다. 몇평 남짓 되는 개인 공간을 제외하고, 사무기기와 회의실, 라운지 등 대부분의 시설은 공유해서 사용한다. 반 년 가까이 되었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고, 사무실 관리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돼서 오히려 편한 게 더 많다.

내년에는 형사 사건에도 전자 소송이 도입되고, 법원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24년경에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법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도 재판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한다. 필자가 꿈꾸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변호사의 길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임주영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Young&Part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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