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경력 12년차에 절취액이 억대에 이르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아니 몇천도 드물었다. 그럼에도 특가법의 적용을 받게 되면 피해액이 고작해야 몇십만원밖에 되지 않아도 그 범인에게는 3년 이상의 실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당시 국선전담변호사를 하면서 그와 같은 양형이 늘 의문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와 같은 양형의 주범이었던 특가법의 주요 조문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2012년경 개업변호사가 되고 고소 사건을 선임하면서 너무나 많고 다양한 재산죄에 놀랐다. 하지만 정말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사기나 횡령, 배임 사건의 피해자가 많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라 그 사건들이 정말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 포스터에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는 문구가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정말 미치도록 법정에 세우고 싶은데 정말 미치도록 그게 잘되지 않는 게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5년 동안 형사재판만 해왔다. 한달에 최소 25건씩, 5년 동안 대충 어림잡아도 1500건이다. 이런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아 미칠 정도면 도대체 일반인인 피해자는 어쩌란 말인지.

동업으로 학원을 운영하면서 다른 동업자들 몰래 학원비를 3~4년에 걸쳐 횡령한 가해자도, 직영으로 건물을 짓는 걸 도와주겠다면서 공사대금으로 받아간 돈들을 횡령한 업자도, 수십년 동안 종중을 장악하고 종중 자산 매각 대금을 이런저런 명목으로 횡령한 종중 대표도, 며칠 후면 갚겠다면서 돈을 빌려간 후 연락을 끊은 지인도 모두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어렵게 가해자를 법정에 세워도 너무나 낮은 형에 피해자는 또 한번 눈물을 흘려야 했다. 사기 사건에서는 피해액이 수십억원이어도 실형 5년이 선고되기 어렵다. 몇십만원어치 물건을 훔쳐도 3년을 사는 것과 너무나 대비된다. 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직접 목숨을 빼앗아야만 살인이 아니다”라면서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사기나 횡령, 배임은 재산상 손실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신뢰까지 짓밟는 범죄이기에 그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인 고통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이에 반해 수사기관의 반응은 너무나 소극적이다. 재산죄의 경우 모든 증거를 피해자가 제시해야만 한다. 금융 거래 내역 하나만 압수수색을 해도 혐의가 드러날 텐데, 수사기관에서는 그 거래 내역을 피해자에게 요구한 후 피해자가 그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다. 가해자가 임의로 거래 내역을 제출하지 않는 것까지 강제하기 어렵다면서 말이다.

누가 봐도 정말 나쁜 놈인데, 경제적인 피해 또한 너무나 자명한 현실인데 그게 왜 처벌이 어려운지 변호사인 나도 정말, 정말,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재산죄의 기소율이 10%도 되지 않는다는 말이 경찰관 입에서 나왔다. 그 비율까지 정확히 꿰고 있지는 못하지만 내 느낌 또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재산죄들도 형법상 범죄이고, 그 피해자들 또한 실제 폭행이나 상해를 당한 것처럼 아픈데, 그 피해 또한 너무나 분명한데 사기, 횡령, 배임이라는 범죄구성요건이나 법리 앞에서 너무나 무력해진다.

수사기관에서 한발만 더 내디뎌준다면 그 증거가 드러날 텐데, 그 모든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모습에 화가 난다. 나쁜 놈들은 하늘이 아니라 법의 심판이 필요한데 천벌에 맡겨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박정교 변호사 · 전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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