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서 소송, 자문이나 그 밖의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일들 중에는 참으로 법치행정이라는 말을 당혹스럽게 여기게 되는 일들이 종종 있다.

소송을 제기하면서 해당 쟁점을 다룬 대법원 판결을 비롯한 하급심 법원의 판결들을 분석하고, 소장 자체에 피고의 행정처분이 잘못됐다는 법원의 판단을 인용하고, 기재해 제출한다. 재판부로 하여금 이미 동일한 쟁점을 다룬 대법원 판결이 있다는 점을 밝혀 신속하게 재판을 받기 위한 목적에서다.

그런데 소장에서 피고가 밝힌 거부처분의 이유는 위법하다고 본, 대법원 판결 판시사항과 사건번호까지 밝혀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대법원에서 위법하다고 본 바로 그 이유를 들어 피고 행정청의 행정처분이 적법하다고 주장하는 답변서를 받아본 경험이 있다. 슬프게도 그러한 경험이 한번에 불과하지 않았다. 그러한 답변서를 받아보면, 대법원이 위법하다고 본 거부사유가 아니라, 다른 사유를 주장해볼 정도의 성의도 없는 것인지 당황스럽기도 하다. 대법원의 판단이 언제나 고정불변이 아니고 판례변경도 있기도 하지만, 기존의 대법원의 판단이 부당하거나 더 이상 기존 판례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없다는 점을 들어 판례를 변경해야 하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득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대법원이 위법하다고 본 사유를, 그대로 들어 행정처분이 적법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추가로 수사(재판)기록 등사와 관련해서, 검찰보존사무규칙이 아무런 법규적 효력이 없고 해당 규정을 근거로 기록등사불허처분을 하면 위법하다고 본 대법원 판결이 십몇년도 전에 있은 후 여러건의 대법원 판결과 무수한 하급심 판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기소사건 기록은 본인 진술 부분이나 본인 제출서류만 등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검찰보존사무규칙을 유지하는 법무부나 검찰의 행정처리도 아쉽기는 매한가지다. 대법원 판결이 있음을 안다면서도 법무부 소속 검사로서는 법무부령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기록등사를 불허하는 검사를 겪어본 경험도 있다. 그리고 재판확정기록도 여전히 불기소사건기록과 동일하게 본인 진술 부분이나 본인 제출 부분만 빼고 나머지는 전부 불허하는, 대법원에서 잘못됐다고 누차 밝힌 기록등사불허처분을 겪어본 것도 그리 먼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행정청 담당공무원이 내부 결재를 받을 때는 다른 날짜로 받았다고 이야기하며, 실제 공식적으로 공고한 날짜까지는 아직 시일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 결재받은 제출기한을 지났으니 접수를 받을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공무원도 겪어보았다. 또한 회의록이나 회의자료도 없고 어떤 내부검토를 거쳐 행정처분을 하였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행정처분을 하였음에도, 행정처분이 적법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접해보았다.

위에서 거론한 경험들이 더 이상 재발하지 않고, 조금 더 법치행정의 길로 나아가기를 소망해본다.

 

 

 

/이용재 변호사

강원회·산건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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