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주변에선 온통 ‘기생충’이 화제다. 개봉 열흘 만에 관객 수 65만명을 넘어섰고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단연 빠지지 않는 대화 주제가 되고 있다. 그 사이 법정과 법조인들이 주인공이 된 영화 ‘배심원들’ ‘어린 의뢰인’도 법조 출입기자들이나 법조인들 사이에서 조용하게나마 오르내렸다. ‘기생충’보다 1~2주 먼저 개봉한 탓에 20만명 안팎의 관객 수를 기록하고 영화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됐지만 적지 않은 호응도를 체감했다.

“큰 사건, 작은 사건을 구별하지 말아야 하는데. 아무리 작은 사건도 당사자에게는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잖아요.” 두 영화를 다 봤다는 한 고위 법관의 감상평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면서도 또 너무 새삼스러운, 마치 교과서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큰 사건과 작은 사건, 법정을 채운 모든 사람의 분위기가 확 다르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법조인도 아니고 그저 이 경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기자인 나부터도 가장 긴장되고 중요한 업무는 ‘큰 사건’ 재판을 챙기는 일이다. 매번 기사를 쓰지 않아도 재판에서 온종일 어떤 공방이 오갔는지 훑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반면 ‘작은 사건’들은 선고 내용만으로도 몇분 만에 뚝딱 기사를 넘길 수 있다.

요즘은 더더욱 긴장감이 남다르다. 전직 대통령이 두명이나 법정에 섰고 재벌 총수도 몇명 거쳐 갔지만 전직 사법부 수장과 핵심 고위층들이 피고인석에 선 장면들은 두고두고 역사의 기록이 될 것 같아 해당 재판이 열리는 날은 바짝 긴장했다가 재판이 열리지 않는 날은 한숨 내려놓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신문 지면에 실리는 큰 사건이 넉넉하게 잡아도 10건이 채 될까.

지난 한해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민·형사 사건만 31만 2227건, 올해 1~4월만 해도 9만 1056건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77%인 6만 9904건이 민사 소액사건이다. 변호인도 없이 손으로 서면을 눌러쓴 사건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사소한 일들로도 법원을 찾는다는 호기심과 흥미로 매주 한건씩 소액사건들을 지면 기사로 소개하고 있지만, 자필로 쓴 서면을 보면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정성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법률 용어나 법조문이 오히려 어색해 보일 정도의 감정적인 사건들이 상당수여도 한편으로는 금방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사연이기도 하다. 기사를 내보내면 큰 사건보다 반응도 즉각적이다.

직권남용이나 뇌물, 또는 몇억대 손해배상 사건 재판을 주워들으며 기사를 써내고 있지만 아주 작은 사건들부터 혹시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판결이 불합리하진 않았는지 거듭 챙겨야 하는 것도 법조 기자라고, 너무나 새삼스럽지만 자주 잊는 다짐을 ‘작은 영화’를 볼 영화관을 찾으며 되새겨 본다.

 

 

/허백윤 서울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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