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내달 본격 시행 위해 경찰청 등과 협의 … 지방회도 적극 협조 의지 밝혀
“변호인 선임 후 수사 상황 전달도 쉬워 실질적 변호인 조력권 보장에 기여할 것”

갑자기 피의자로 조사를 받게 됐다. 변호인은 아직 없다. 처음 받는 조사가 부담스럽고 긴장돼 어떤 진술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이럴 때 경찰관이 내미는 ‘자기변호노트’ 한권. 이제 전국 어느 경찰서에서든 접하게 될 일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자기변호노트’ 전국 확대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자기변호노트는 피의자 권리를 일깨우고 수사 과정을 스스로 기록하도록 만든 노트다. 피의자뿐 아니라 변호인도 조사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전국지방변호사회에서도 협조키로 했다. 지난달 24일 전국지방회장협의회에서 논의한 결과다. 각 지방회는 자기변호노트 담당 변호사 및 직원을 구성하는 등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경찰청 역시 자기변호노트 전면 시행을 적극 준비하고 있다. 현재 서울 모든 경찰서에서 자기변호노트를 활용하고 있다. 경찰청은 설문조사와 현장 간담회 등을 시행함으로써 시범 경과도 지속적으로 점검 중이다.

이달 중 변협은 경찰청과, 각 지방회는 지방경찰청과 자기변호노트 인쇄 부수, 비치 장소, 홍보포스터 부착 장소 등을 협의할 계획이다. 또 설문조사 등으로 자기변호노트 실시 상황을 점검하고 내용과 형식을 개선키로 했다.

본격적인 전국 시행은 내달부터 진행될 예정이다. 각 경찰서에 매월 자기변호노트 일정량을 배포하고, 홍보 포스터를 부착하는 등 모든 피의자가 자기변호노트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송상교 변협 자기변호노트TF 위원장은 “자기변호노트가 전국 경찰서에 비치되고 피의자가 조사내용을 언제든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이 수사관과 피의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면서 “무엇보다 변호사단체가 형사절차에 주도적으로 관여해 국민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을 이끌어낸 매우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국인 피의자도 모든 경찰서에서 자기변호노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할 방침이다. 변협은 자기변호노트 영문본도 소량 제작해 매월 경찰서에 배포하기로 했다. 수량이나 다른 외국어본 제작 등은 수요조사 후 정할 계획이다.

현재도 온라인으로 자기변호노트 한국어본뿐 아니라 외국어본을 받을 수 있다. 대한변호사협회(koreanbar.or.kr), 서울지방변호사회(seoulbar.or.kr), 서울지방경찰청(smpa.go.kr) 등에서 자기변호노트를 검색해서 받은 파일을 직접 출력해 사용하면 된다. 현재 자기변호노트는 영어·중국어·일본어·태국어·인도네시아어·네팔어·몽골어·버마어·베트남어·타갈로그어·벵골어 11개국 언어로 번역돼 있다.

 

피의자, 변호인 모두에게 호평 일색

자기변호노트는 ① 사용설명서 ② 수사절차에서의 당신의 권리 ③ 자유메모란 ④ 자기변호노트 체크리스트로 구성된다. 수사절차부터 조사를 받을 때 주의해야 할 사항, 메모해야 할 사항과 권리 등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어 조사 전 한번 훑어보면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체크리스트는 조사 시 인권 침해가 있었는지, 절차에 맞게 조사가 진행됐는지 등을 검토해볼 수 있다. 조사자는 피의자가 작성한 자기변호노트를 보여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만약 조사 시 메모를 하지 못 하게 한다면, 경찰서 청문감사관, 검찰청 인권보호관, 국가인권위원회(국번 없이 1331)로 연락하면 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5년 피의자 신문과정 시 메모행위를 허용하도록 직무교육을 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피의자 방어권 보장을 위해 메모를 허용치 않는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기변호노트는 이미 서울 지역에서는 호평을 받으며 자리잡아 가고 있다. 시범 실시 기간 동안 자기변호노트를 사용하고 설문에 응답한 피의자 108명 중 67%가 ‘혐의 사실과 조사내용을 확인하고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다음에 조사를 받게 될 경우에도 자기변호노트를 기록하겠다’는 응답도 57%였다.

허윤 변협 수석대변인은 “그간 조사를 받으면 위축돼있을 수밖에 없던 피의자가 권리를 알고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피의자 본인이 직접 수사기관에 자기변호노트 제공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양소영 변협 공보이사도 “피의자가 나중에 변호인을 선임해도 자기변호노트를 보면 그간 진술 내용과 수사 상황 등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로써 변호인 조력권까지도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기변호노트뿐 아니라 최근 피의자 인권과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실시되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해 12월부터 모든 경찰관서에 자기변호노트 제도와 유사한 ‘메모장 교부제’를 시범 도입하기도 했다. 메모장 교부제는 피의자 권리를 안내하는 문서와 메모장을 함께 제공하는 제도다.

또 경찰청은 지난해 3월부터 ‘변호인 참여 실질화’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 사건관계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변호인과 조사 일시·장소를 사전 협의하고, 조사 시 조언과 상담도 할 수 있게 됐다. 정책 실시 후 1년 동안 변호인 참여 횟수가 이전보다 43.1% 증가했다.

‘진술 녹음 제도’도 도입된 상황이다. 조사대상자가 진술녹음에 ‘동의’하는 경우에만 경찰관이 사건관계인 진술을 녹음·저장할 수 있다. 조사대상자는 조사 후 파일을 청취하거나 정보공개절차에 따라 녹취록을 작성할 수 있다.

진술영상을 녹화할 수도 있다. 의무녹화대상은 강도·마약, 경제범죄 등 피의자다. 단 죄종에 관계 없이 피의자가 요청하면 영상 녹화를 실시할 수 있다.

변협은 우리나라에서 피의자 방어권과 변호인 조력권이 충분히 지켜질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할 방침이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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