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은 사건 관련자들이 각자 거짓말을 하여, 실제와는 괴리된 허상이 만들어지는 경우를 목격한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누군가가 그 거짓말에 편승하다 보면, 실제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은폐되고 만다.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라는 표현이 있다. 이것은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으로 해석하여 본질을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라쇼몽’이라는 영화에서 비롯되었다.

영화는 사무라이 부부가 숲길을 가던 중, 한 도적을 만나 사무라이 남편이 사망한 사건을 다룬다. 관련자들이 사건에 대하여 증언을 하게 되는데, 이 사건을 겪거나 지켜본 사람들의 진술이 전부 다르다. 도적은 살아남는 사람을 따라가겠다는 여인의 유혹에, 사무라이 남편과 격렬한 칼싸움 끝에 남편을 죽이게 되었다고 진술한다. 부인은 능욕을 당한 후, 남편의 증오와 경멸에 찬 눈빛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남편을 칼로 찔렀다고 이야기한다. 죽은 사무라이는 무녀의 입을 빌려, 부인이 그녀를 능욕한 도적에게 추태를 보이는 모습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자괴감에 자결하였다고 말한다.

영화 라쇼몽은 이러한 내용의 원작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줄거리에 더하여 사건의 실제 사실관계를 보여주는데, 정절을 강조했던 여인은, 두 사람에게 결투를 하도록 조장하였고, 도적과 사무라이의 싸움은, 실제로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형편없고 지저분한 진흙탕 싸움이었다.

결국 각자는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사실을 숨겼던 것이다. 즉 부인은 남편을 죽이도록 이야기했던 부분을 숨겼고, 도적은 호탕한 행동으로 자신의 탐욕을 숨겼으며, 사무라이는 무사도 정신에 어긋난 부분을 감추었다.

변호사들은 엇갈리는 당사자들의 진술을 흔히 만난다. 역사적 사태는 하나이지만, 당사자들이 기억하는 사실관계는 전혀 다르며, 각자의 주장은 이를 반영한다. 어쩌면 실체적 진실은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사실에서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이익과 편리에 따라 주장되는 허상의 사실관계만이 법정에서 다툼을 하는 셈이 된다. 우리는 진실된 사실관계를 좇는 것이 아니라, 기록과 주장 속에서 새롭게 각색된 사실관계를 좇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진술에 따라 진실이 왜곡됨으로써 피해를 입게 되는 당사자가 있으면 안되는 것이 아닐까.

과거 필자가 맡았던 사건 중에는 고소인 주장과 이에 부합하는 증인 2명의 진술로, 피고인에 대하여 1심에서 사기죄가 인정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에서 2명의 증인 외의 많은 객관적 정황들이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경우가 있었다.

불명확한 당사자들의 진술에 의존하여 구성된 사실관계는 진실에서 멀어질 수 있다. 거짓말이 난무하고, 당사자들의 그럴듯한 현란한 이야기들이 법정에서 이어진다. 이런 때일수록 당사자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사건의 중심을 놓치지 않고, 실체적 사실관계를 파악해가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재진 변호사

경기중앙회, 법무법인 정상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