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협회장 ‘시니어 법관’ 도입 주장 … 파트타임 형태로 근무하며 일정 보수 지급
“퇴임 대법관 대법원 업무 돕게 해 신속한 판결 도모, 사법 신뢰 회복할 수 있을 것”

문재인 정부가 사법개혁을 추진 중인 가운데, 법조계의 오랜 병폐로 여겨져 온 ‘전관예우’ 문제를 척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다수 국민이 사법 불신의 가장 큰 요인으로 전관예우를 꼽는 만큼, 이는 사법 신뢰 회복을 위해 꼭 해결해야 할 문제다.

김현 변협 협회장은 “원칙적으로 고위공직자는 개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에 변호사 개업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사회에 봉사하도록 권유할 예정”이라며 미국의 ‘시니어 법관(senior judge)’ 제도 도입을 제시했다.

미국 연방법원 법관은 한번 임명되면 임기나 정년 없이 근무하는 종신제로, 65세가 되면 은퇴하거나 재직기간이 15년이 넘을 경우 시니어 법관 지위를 선택할 수 있다.

시니어 법관은 파트타임 형태로 근무하며 ▲통상 업무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재판업무 수행 ▲조정, 신청사건, 의견서 작성 ▲사법행정이나 행정부 관련 행정업무 등을 맡는다. 이처럼 재판업무뿐만 아니라 비송사건, 사법행정 업무를 광범위하게 취급하며 사법부에 대한 조언, 외부 봉사활동 등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시니어 법관이 되기 직전 수령하던 급여의 70% 이상을 받으며, 사무실·로클럭·비서 등 업무량에 따른 적절한 처우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시니어 법관은 2015년 기준 연방지방법원 법관의 약 39%, 연방항소법원 법관의 33%를 차지하고 있다. 연방항소법원에서는 전체 사건 수의 22.5%를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현 협회장은 “미국도 법관보다 변호사 수입이 높아 이들의 변호사 개업을 막고, 법관으로서 쌓아둔 경륜을 활용하기 위해 시니어 법관 제도를 도입한 것”이라면서 “시니어 법관은 법관 정원에 포함되지 않아 시니어 법관이 비운 자리에 법관을 새로 임명할 수 있으므로 법원 업무 경감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현 협회장은 더 나아가 대법관 경험이 있는 시니어 법관에게 대법원 업무를 돕게 하자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작년에 접수한 본안사건 수는 4만1850건에 달한다. 대법관 1인당 3219건, 주말을 포함해 하루에 약 9건을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대법원 심리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상고가 기각되는 심리불속행 기각률도 70%를 웃돌아,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이 나면 선고 없이 간단한 기각 사유를 적은 판결문만 송달된다.

김현 협회장은 “중요 상고사건 기록 검토를 실력 있는 시니어 법관이 해준다면 대법관 업무는 경감되고 대법원에 대한 신뢰는 올라갈 것”이라며 “희망에 따라 파트타임 근무도 가능하게 하고, 급여는 현직 대법관보다 적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퇴임 대법관들은 평생 법원에서 재판업무에 종사한 분들로, 그들의 경륜과 소중한 경험을 사장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대법원에서 시니어 법관 제도를 정착시킨 후 퇴임 법원장, 고법 부장판사, 지법 부장판사로 점차 범위를 넓혀나간다면, 능력 있는 중견 법관의 손실을 막고 전관예우 가능성을 없앨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법서비스 수준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내에서도 시니어 법관 제도는 사법부 업무를 담당하면서도 사회에 봉사하고, 본인의 오랜 경험을 후배 법관들에게 전수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워렌 버거 대법원장은 시니어 법관으로 헌법 제정 200주년 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았으며, 루이스 포웰 대법관은 고향으로 돌아가 항소심 법관을 지냈다.

김현 협회장은 “국민은 특히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이 퇴임 후 영리업무에 종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라면서 “시니어 법관 제도를 조속히 도입해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연방법원 외에 아이오와주·펜실베이니아주·버지니아주 대법원에서 시니어 법관 제도를 택하고 있으며, 영국 연방 대법원도 위 제도를 택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퇴임 후 변호사 개업 하지 않는 것이 관행”

시니어 법관 제도와 함께 전관예우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도 중 하나로는 법원장 순환보직제를 들 수 있다.

법원장 순환보직제란 법원장이 재판장으로 복귀한 뒤 정년까지 근무하는 제도로, 대법원은 지난 2012년부터 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과거에는 법원장 임기를 마친 법관은 퇴직하는 것이 관례였다.

대법원은 “법원장 순환보직제 시행으로 사법행정을 경험한 법원장의 원숙한 재판을 통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더욱 충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의 경우 대법관 등 고위 법관들은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 것이 관행화 돼 있다.

미국은 연방 대법관뿐만 아니라 연방법원 법관의 임기가 종신으로 헌법에 규정돼 있다.

독일의 모든 법관은 임기없이 65세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으며, 법관이 퇴임 이후 변호사로 개업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시적 규정은 없으나, 퇴임 직후 곧바로 직전 근무지 법원 사건을 수임하는 것은 금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본도 최고재판소 법관에게는 정해진 임기가 없고, 정년만 70세로 규정돼 있다. 일본은 ‘전관예우’라는 단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문제가 대두되거나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지도 않는다.

영국은 대법관은 종신, 일반 법관은 75세로 정년이 정해져 있으며, 법조일원화가 이뤄져 있어 퇴직 후 변호사 개업 사례는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현 협회장은 “시니어 법관 제도는 전관예우와 대법원 사건 적체와 같은 법조계 난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변협은 대법관 증원을 통한 사건 적체 문제 해결을 주장해왔으나 실현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시니어 법관을 우선 활용하면 대법관을 증원한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길 것”이라면서 “공평하고 신속한 재판으로 국민을 만족시킴으로써 사법 신뢰를 회복해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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