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3. 5. 23. 선고 2010다50014 판결

I. 개요
우리 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 이래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구)『국토이용관리법』)상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의 부동산에 대한 매매계약에 관하여 이른바 유동적 무효의 법리를 만들어 왔다.
대상판결은 유동적 무효의 법리에 관한 또 하나의 중요 판례임과 동시에 유동적 무효의 법리에 대하여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게 하는 의미 있는 판결이다. 특히 동일한 목적물에 대하여 유동적 무효인 매매계약이 이중으로 체결된 사안에서, 양자의 지위가 어떻게 되는지, 이와 관련하여 처분금지가처분 및 채권자대위권에 있어서 보전의 필요성 문제에 관하여 다시 생각하게 하며, 신탁등기와 토지거래허가 관련 등기선례 등 실무상 흥미로운 쟁점들이 포함되어 있다.

II. 사안과 판결 요지
1. 사안의 개요
2006년경부터 도시개발사업이 준비되어 오던 지역 내의 토지소유자인 A는 B회사와 부동산매매계약을 채결하고 계약금을 수령한 상태에서(제1매매계약), 다시 C회사와 부동산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제2매매계약). 이들 계약은 도시개발사업구역지정 등을 정지조건으로 한 것이었으며,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 있었는데, B, C 모두 정지조건을 성취하지도 못하였고, 토지거래허가도 신청하지 못한 상태였다. 한편 매수인들의 지위의 보전에 관하여, ① A와 C는 D신탁회사와 C를 우선수익자로 하는 부동산처분신탁계약을 체결하고 신탁예약을 원인으로 D명의의 신탁가등기를 경료되었고, ② 그 후 B는 토지거래허가 신청절차의 협력이행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하여 처분금지가처분결정을 받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B는 A에 대한 토지거래허가신청절차의 협력의무 이행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하여, A를 대위하여 D명의의 신탁가등기의 말소를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B의 주장의 요지는, C의 매매계약이 토지거래허가를 받지 못하여 유동적 무효이고, 따라서 아무런 채권적 권리를 갖지 못하는데, D의 신탁가등기가 경료되어 있어 사실상 우선수익자인 C가 채권적 권리를 실현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어 국토계획법의 취지를 잠탈하는 탈법행위로 무효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D의 주장은, A의 피보전권리는 정지조건이 성취되지 않았으므로 이행기미도래와 같을 뿐 아니라 본건 피대위권리가 적극적인 것이어서 그 속성상 보존행위라고 할 수 없는 등 채권자대위권 요건이 결여되었고, 신탁가등기에 의한 채권적 지위의 확보는 처분금지가처분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의 취지에 비추어 금지되거나 무효인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2. 판결 요지
원심법원은 B가 A를 대위하여 D명의의 신탁가등기의 말소청구를 인용하였다. 반면, 대법원은 B의 D에 대한 신탁가등기 말소청구 부분에 관하여, 채권자 대위권에서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하고 이 부분 소를 각하하는 자판을 하였다.

판결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시하였다. 우선, 제1매매계약과 제2매매계약 모두 토지거래허가를 받지 아니한 상황이기 때문에 유동적 무효 상태에 있어 양 계약 사이에 그 실현에 있어 우열관계에 있지 않다고 보았다. 따라서 제1매매계약에는 채권적 효력이 발생하지 아니하므로 B가 제2매매계약 체결행위를 배임적인 이중매매 행위라고 주장하여 효력을 다툴 수 없다는 것이다(대법원 1994. 6. 14. 94도612 판결, 대법원 1996. 8. 23. 선고 96도1514 판결 등 참조). 한편 A로서는 제2매매계약에 관한 토지거래허가 신청절차의 협력의무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연 B가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하여 제2매매계약 및 그와 관련하여 이루어진 신탁계약이나 신탁예약의 무효를 주장하여 신탁가등기의 말소를 구할 수 있는지 단정하기 쉽지 않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만일 B 자신은 A에 대한 토지거래허가 신청절차의 협력의무 이행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한 처분금지가처분을 받아 놓고서 채권자대위권을 통하여 제2매매계약과 관련하여 신탁가등기를 말소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사실상 B가 제2매매계약을 배제하고 제1매매계약에 의한 채권적 권리를 실현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가 되는데, 이와 같은 결과는 토지거래허가 신청절차 협력의무 이행청구권의 현실적 이행을 유효·적절하게 확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매수인인 C 등에 사실상 우선하여 허가구역 내의 토지에 관한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는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될 수 있어 부당하다는 취지이다.

한편, 채권자대위권은 보전되는 채권에 대하여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대상사안의 경우 ① 협력의무 이행청구권의 특수한 법적 성격, ② 매도인의 권리 미행사가 협력의무의 현실적 이행에 뚜렷한 장애가 되는지, ③ 매도인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사유는 무엇인지, 오히려 매수인의 협력의무 이행청구권의 행사가 조건 등의 장애 사유 때문에 장기간 지연되었는지 및 그 지연에 매수인에게 귀책사유가 없는지, ④ 매도인의 권리 행사를 강제하는 것이 매도인의 재산권행사에 커다란 불이익을 가져오거나 자유로운 재산관리행위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수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III. 평석
대상판결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이중매매 체결된 경우 제1매수인이 매도인을 대위하여 제2매매 관련 신탁가등기말소 구한 데 대해, 보전의 필요성을 부정하여 이를 각하한 사례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대상판결은 그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우선, 이중매매에서 두 개의 매매계약이 모두 유동적 무효인 경우의 법리이다. 대상판결은 이에 대하여 양자가 상호간 우열관계가 없는 것으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유동적 무효상태에서는 채권이 발생하지 아니하므로, 이중매매상태라 하더라도 상호간 우열관계가 없다는 대상판결의 논지는 비록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형사판결(대법원 1994. 6. 14. 94도612 판결, 대법원 1996. 8. 23. 선고 96도1514 판결 등 참조)을 인용한 것이지만, 이는 민사사안에서도 수긍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우열관계가 없다는 것이 유동적 무효상태에서 그렇다는 취지로, 향후 확정적 유효가 되는 경우에는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 것인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처분금지 가처분을 먼저 한 쪽이 우선인지, 또는 소유권이전등기를 먼저 한 쪽이 우선인지, 나아가 신탁등기 및 신탁가등기의 효력을 어떻게 볼 것인지 등에 대하여 검토한 후, 유동적 무효의 이중매매시 종국적으로 확정적 유효로 될 경우 우열관계의 판단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대상판결은 이에 대해서는 밝힌 바 없어 향후 과제라 하겠다.

다음으로 대상판결은 채권자대위권에 있어서 보전의 필요성에 관하여 판시한 판례로서 의미를 가진다. 지금까지는 채권자대위권에서 주로 특정채권 보전을 위한 채권자대위권을 중심으로 무자력 요건이나 피보전권리 적격에 관한 논의가 있었지만, 보전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문제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상판결에서는 채권자대위권이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한 자기의 채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채무자의 제3자에 대한 권리를 대위하여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므로, 보전되는 채권에 대하여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전제한 후, 보전의 필요성의 요건에 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설시하였다. 즉, 채권자대위권에서 보전의 필요성은 ① 채권자가 보전하려는 권리와 대위하여 행사하려는 채무자의 권리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② 채권자가 채무자의 권리를 대위하여 행사하지 않으면 자기 채권의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없게 될 위험이 있어 채무자의 권리를 대위하여 행사하는 것이 자기 채권의 현실적 이행을 유효·적절하게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말하며, ③ 채권자대위권의 행사가 채무자의 자유로운 재산관리행위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보전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설시하였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대상판결에서는 보전의 필요성을 부인하였는데, 유동적 무효의 이중매매상태에서 제1매수인이 매도인의 제2매수인에 대한 권리 행사를 강제하는 것이 매도인의 자유로운 재산관리행위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고려된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대상판결은 매도인의 제2매수인에 대한 신탁가등기 말소청구권을 인정한 후 그 대위행사만을 불허한 사안은 아니고,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매도인의 신탁가등기 말소청구권의 존부 자체에 대해서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하여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판단하지 아니한 채 제1매수인의 대위청구에 있어서 보전의 필요성을 부인하여 대위행사를 불허한 사안이라는 점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매도인이 제2매수인에 대하여 신탁가등기에 대한 말소청구권을 가질 수 있을까? 나아가 신탁가등기가 아니라 신탁등기라면 어떨까 하는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인데, 사견으로는 신탁가등기나 신탁등기의 말소청구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상사안에서 주장된 바와 같이 신탁등기 또는 신탁가등기가 국토계획법의 취지를 잠탈하는 탈법행위로 무효로 되는지 등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신탁등기나 신탁가등기의 경우 토지거래허가가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은 대상사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고려사항이라고 생각된다. 등기선례상으로는 신탁예약을 원인으로 한 신탁가등기시 토지거래계약허가증를 첨부할 필요가 없는데(2007. 3. 21. 등기선례 제8-69호), 그 이유는 신탁가등기의 경우 대가가 수반되는 계약이라고 볼 수 없어서 법률상 토지거래허가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이와 같은 입장은 신탁가등기뿐 아니라 신탁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1996. 5. 6. 등기선례 제4-609호). 신탁등기나 신탁가등기가 대가가 수반되는 계약이 아닌지에 관하여는 구체적으로 좀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이지만, 위와 같은 등기선례가 유지됨을 전제로 매도인으로서는 적어도 토지거래허가를 받지 못하였음을 이유로 말소청구를 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신탁등기 또는 신탁가등기가 국토계획법의 취지를 잠탈하는 탈법행위로 무효로 되는지에 관하여도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생각된다. 신탁제도는 연혁으로 보나 실제 활용상으로 보나 그 자체가 탈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기왕에 우리 법제가 신탁제도를 인정하였다면, 기존의 법제에 의하여 해결되기 어려운 구체적인 문제들을 신탁제도를 통하여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입법적인 결단을 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신탁제도를 활용할 경우 기존의 다른 법제의 취지를 면탈하는 것은 모든 신탁제도 활용사례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이를 기존의 시각에 따라 함부로 탈법행위로 단정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된다. 탈법행위인지 또는 정당한 범위 내에서의 신탁제도의 활용인지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신중히 판단하여야 할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가처분과 신탁가등기간의 우열관계에 관하여 생각해 보자. 대상사안은 신탁가등기가 먼저 경료된 것이지만, 만일 가처분이 먼저 이루어진 경우를 가정하면 어떻게 될까? 등기선례상으로는 토지거래허가절차이행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하는 가처분등기가 경료되고, 가처분채권자가 승소확정판결을 받아 소유권이전등기를 신청하는 경우 그 가처분에 저촉되는 제3자 명의의 등기말소를 신청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2010. 6. 18. 등기선례 제201006-2호). 따라서 위와 같은 등기선례가 유지됨을 전제로 가처분등기 후에 경료된 신탁가등기도 말소될 수 있을 것이다. 사견으로는 위 등기선례에 대해 좀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토지거래허가절차이행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하는 가처분을 인정할 뿐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하는 가처분은 부정하는 현재의 대법원판례의 입장과 모순 없이 설명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며, 유동적 무효의 이중매매 사안에서는 처분금지가처분을 먼저 하는 쪽이 차후 확정적 유효가 되었을 때 종국적으로 우선적 지위를 가지게 된다는 결과가 과연 합리적인지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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